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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2. 잘못 출발된 역사

창세기 3장에서 11장까지는 창세설화의 속편으로서 잘못된 역사 시발을 서술한다. 이 안에 있는 자료는 J자료와P자료이며, 여기에는 이것을 편집한 편자의 흔적이 뚜렷하다.

이른바 아담의 타락은 신이 금한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것으로 시작된다. 낙원의 아담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통치권과 자유를 가졌으나 한계를 가진 존재이다. 그런데 아담은 이 한계선인 금단의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하느님 앞의 존재성'을 파괴했다. 인간은 한계지어진 존재라는 본질을 파괴한 것이다. 따라서 '더불어 사는 존재성'에 균 열이 생겼다. 하와8)하와는 '삶'(Hai) 또는 '살린다'(haya)는 히브리 말과 뿌리를 같이하는 이름이다.와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이 그 증거다.

금단의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낙원에 안주하는 인간이 아니라 역사 속의 인간이 되었다. 그것은 자유와 책임, 권리와 의무, 사랑과 미움 등의 긴장 속에서 계속 결단을 함으로써 자기를 잃을 수도 있고 얻을 수도 있는 모험의 삶이 출발된 것을 의미한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창 3, 9)

이 첫 질문은 장소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것은 존재양식에 대한 물음이다. 존재는 더 이상 자명적인 것이 아니라 잃을 수도 있고 얻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역사의 인간은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 수 있고 땅과 씨름을 계속하면서 살아야 하며,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창 3, 19) 함은 삶이 바로 투쟁이며, 인간은 한계적 존재, 즉 '죽음에 이르는 존재'임을 말한다.

이렇게 출발된 아담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책임을 질 수 없으면서도 자주적임을 주장해야 하는 삶으로서, 잘못 출발된 역사이다. 이렇게 출발된 역사는 잘못(죄악)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9)안병무, 「창세기의 인간관」, 『現存』 3호. 역사 속의 아담에게 카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이 생겼다. 그들은 아담의 분신이다. 카인은 농부(農夫)이고 아벨은 목자(牧者)이다. 아담이 분화(分化)된 것이다. 둘은 제물을 야훼께 드리다가 질투를 경험하며, 그 결과 카인은 아벨을 살인한다. 아담의 분산끼리 상잔(相殘)한 것이다. 이 마당에 이런 물음이 주어진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 9)

이것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 즉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임을 확인시키는 물음이다. 사람은 이웃에 대해 하느님 앞에 책임이 있다. 그런데 아벨을 죽인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반발함으로써 자기됨을 버린다. 카인은 '더불어의 존재'임을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땅이 입을 벌려 네 아우의 피를 네 손에서 받았다"고 한다.

땅이 사람의 피를 머금었다. 땅은 카인을 고발한다. 이것은 범죄 이후의 아담과 땅의 나쁜 관계(창 3, 17~18)를 심화한 것이다. 이로써 카인은 유랑의 길을 떠나야 한다.

성적 반항(창 6, 1~4) : J편자는 아주 고대의 신화로 보이는 전승을 통하여 잘못된 역사의 또 다른 면을 고발한다. 그 신화는 신의 아들들이 땅 위의 인간의 딸들과 혼음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사람의 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편자는 그런 논리에 구애되지 않고, 이로써 인간이 철저히 타락한 것에 대한 구체적 상징으로 삼는다. 도스토예프스키(F. M. Dostoevsky)의 작품 속에는 두 가지 면에서 초인(超人)이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의지로써 초인이 되려는 부류이며, 다른 하나는 성적 방종으로써이다. 책임은 어디 있든지간에 신적 존재와 혼음함으로써 마침내 신과 인간 사이의 한계를 없애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세상이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 차고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하는 것을 본 야훼는 분노하였다.

이 세상은 이제 막판에 이르렀다. 땅 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다(창세 6, 13).

그리하여 인간을 창조한 것을 후회하면서(이것은 J자료) "다 쓸어 버리기로 하여" 저주의 비를 내리는 것이다. 위에서 본 대로 하면 인간이란 일종의 존재론이 된다. 그런데 창세설화는 존재론을 펴려는 것이 아니다. 아담과 하느님 사이의 이 이야기는 바로 이스라엘 민족사에서 전개된다. 그러므로 아담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민족사를 압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노아 홍수설화(창세 6, 5~9, 17) : 노아의 홍수설화는 하나의 민담이며 동화적 요소가 담긴 내용인 탓에 현대인은 무조건 무시했다. 반면에 고고학적 발굴작업으로 그것의 사적(史的) 증거를 내세우기에 부심하는 이들도 있다. 가령 울리(L. Wooley)가 갈대아(chaldea)의 우르(Ur)지대(현재의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접경지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어느 아득한 고대에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지역에서 홍수로 모든 생물이 말살된 일이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 민담은 역사적 자료로서 시위하려고 하지 않고 창조설화의 맥락 속에서 다른 뜻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 하나는 하느님은 역사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심판을 한다는 것이다. 이 역사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것을 후회할 만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간다. 이것은 잘못 출발된 역사에 대한 심판이다. 둘째로 그것은 인류를 저주한 심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라리 숙청작업이라는 말이 가까운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와 그 식구만은 예외로 하여 새 시대 출발의 씨받이가 되게 한 것이다. 하느님은 노아에게 "올바른 사람은 너밖에 없다"(J 자료)고 한다. '올바르다'고 번역된 것은 '의로운 사람'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개역). 그런데 그것은 윤리적으로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노아만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 그뜻이다.

40일 동안 밤낮 비가 왔다는 것이 반복되는데, 짐승들을 한 쌍씩 구제하라(창세 6, 19)는 데가 있는가 하면 두 쌍씩 구제하라(창세 7, 9)는 데가 있고 또한 부정한 짐승은 두 쌍씩, 깨끗한 짐승은 일곱 쌍씩이라고 한 데도 있다. 이것은 다른 두 가지 이상의 자료를 종합한 증거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노아의 방주에 수용된 노아의 가족과 짐승들 외에는 모든 생물들이 없어졌다. 새 시대의 출발은 역시 하느님과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새 출발을 시작하는 아담과 그 자손들은 하느님의 장엄한 축복과 약속을 받는다. 그 서술은 P편자의 것이다. 그 내용은 아담에게 준 것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다음 몇 가지 점은 다르다. 노아의 축복 속에는 짐승을 다스리는 것만이 아니라 짐승을 양식으로 허용하고 있다. 아담에게는 식물만을 먹도록 했는데(창세 1, 9), 노아에게 주어진 약속은 창세설화와 연결되어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임을 재확인함으로써 인권의 근거를 강조하여 "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제 피를 흘리게 되리라"고 한다. 이것은 카인 이후의 살인의 역사를 전제로 하는 금령이다. 그러나 '살인하지 말라'는 금령형이 아니라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임을 알리는 서술법을 씀으로써 인간의 자유 의지에 호소한다.

우리는 아담의 반역 이래로 카안의 살인 등 모든 죄악상을 이른바 원죄설(原罪說, Original sin)의 안경을 쓰고 보도록 훈련되어 있다. 그러나 원죄설에 매일 필요는 없다. 아담 이후 인간은 가능성의 영역에 놓인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느님을 배반할 수 있는 가능성, 형제를 죽일 수 있는 영역에 모든 사람은 놓여 있다. 그러므로 '살인하면'이라는가설법으로 살인을 금한다.

약속이란 상대방을 하나의 주체로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그것을 이스라엘은 '계약관계'로 해석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하느님이 사람에게 새로운 약속을 하는 것은 바로 계약을 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계약은 하느님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로서 구약에서는 큰 의미를 갖는다. 계약의 내용은 다시는 홍수로써 인류를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그 표시로 무지개를 주겠다고 한다. 이것은 무지개가 뜨면 비가 그친다는 경험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현상을 하느님의 계약으로 해석하는 것은 구약의 독특한 파악이다.

바벨탑과 언어의 혼란(창세 11, 1~9) : 창세설화에서 절정을 이루는 마지막 것은 바벨탑 이야기이다. '바벨'은 '바빌론'이라는 말의 히브리어 표현이다. 바빌론은 이미 B.C. 1000년대에 고대 중동의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당시 모든 권력은 이곳에 집중되었다. 저 유명한 법전을 낸 함무라비(Hammurabi, B.C. 1728~1686년)도, 구약에서 크게 부각되는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B.C. 605~502년)도 바빌론의 왕들이다. 그들의 문명은 그 당시의 기술사회의 선구로 등장한다. 저들이 자연석 대신 인공으로 만든 벽돌을 쓰고 흙 대신 역청을 접착제로 사용해서 본문(本門)을 대건설했다는 것이 그 일면을 말해주며 역사적으로도 사실이다. 바빌론이 바로 건축의 대명사인 것처럼 고고학적인 발굴에서 드러난 규모는 대단하다. 그것은 종교적으로도 중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들의 신은 많으나 마르둑(Marduck)이 주신(主神)으로 적어도 함무라비시대에는 셈족(Sem族) 영역을 석권했다. 따라서 그들은 도처에 신전을 세웠는데 어떤 신전은 그 높이가 91.5미터나 되었다.

이 바빌론에 대해서는 구약에서 무수하게 언급되는데 J편자시대까지도 그 탑이 완성을 못 본 채 중단돼 있었던 것 같으며 이미 국가로서도 쇠망해갔던 것 같다. 바빌론은 히브리어로 '바벨'인데 그것은 '혼란'이란 뜻에서 온 것이다(W. R. Soden).

바빌론에 대해서는 그들의 죄악이 구약 속에 많이 언급되어 있는데(이사 13, 1414, 13; 예레 51, 6 이하 등), 이 설화에서는 그들의 교만을 규탄한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창세 11, 4).

여기에 그들이 도시를 건설하고 동시에 자신들의 기술로써 하늘까지 치닿겠다는 교만이 드러나 있다. 이것은 저들의 언어가 통일됐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언어의 통일은 정치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그것은 권력의 중앙집권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그 둘의 언어가 통일됐기에 그 같은 오만을 기술로 과시하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신에 대한 집단적 도전을 뜻한다. 이러한 바벨탑을 본 하느님은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것이 있으랴'고 하며 그들의 오만을 없애기 위해서 언어의 혼란을 가져옴으로써 그들의 건설이 중단됐다는 것이 편자의 신학적 판단이다. 어쩌면 오늘의 사람이 스스로의 기술문명으로 우주를 정복하는 것과, 그것 때문에 인류가 자멸할 위기에 서있는 것을 앞질러 보인 것 같다. 하느님은 그들이 그렇게까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전에 개입한 것이다.

이상의 자료들을 눈여겨본 사람들은 이 자료들이 상호연관이 없었던 것임을 곧 알게 될 것이다. 가령 노아 후손들의 계보와 그 후손들의 분열 이야기를 앞세우고, 그것과 상관없이 평행되는 바벨탑 이야기는 마치 세계 인류 전체처럼 서술하는 것 등이 그렇다. 성서의 편자는 여러 전설이나 민담을 자유자재로 이용하여 최초의 잘못된 역사를 거듭 강조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그 잘못이란 하느님께 도전하는 인간역사이다. 이 잘못되어가는 역사의 종국적 파멸 이전에 개입하는 하느님의 뜻은 후에 주제가 되는 구원사적 사관(史觀)과 관계가 있다.


|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한국어로 된 성서 연구 참고문헌
전집간행에 부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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