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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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족장들

by 운영자 posted Sep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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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로서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을 든다. 이들은 이른바 족장(族長)들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 또는 야곱을 민족의 조상으로 숭앙한다. 그렇다면 저들이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 되었는가? 도덕적으로 훌륭했는가, 아니면 위대한 영도자였는가, 또는 다른 건국영웅의 신화에서 보는 것 같은 초인적인 능력을 가졌는가? 아니다. 그들에게서는 전혀 그러한 특별한 힘을 볼 수 없다. 오히려 도덕적인 측면에서 보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겁하고 나약하고 때로는 교활한 면들이 성서에는 그대로 폭로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기근으로 인해 에집트에서 방황할 때, 자기 아내 사라를 그 나라 왕에게 바침으로써 자기 생명을 보전하려 했다고 한다. 그를 '신앙의 조상'이라고 하지만 사라가 임신하리라는 고지(告知)를 좀처럼 믿으려고 하지 않는 '회의(懷疑)의 사람'으로 보도되어 있다. 이사악도 거의 똑같은 비겁함을 보였으며 이렇다 할 비범함이 보이지 않는다. 야곱은 더더욱 민족의 도덕적인 모범이 될 수 없다. 야곱은 그야말로 자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간교한 인물이었다. 배고파하는 형의 약점을 이용하여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는가 하면, 아비의 축복을 훔치기 위해서 가장(假裝)을 서슴지 않았고, 자기에게 이익 되는 일을 위해서는 온갖 간교를 부렸다.

그런데 그들이 숭앙한다는 조상들에 대해서까지 이러한 인간의 약점들을 서슴지 않고 폭로할 수 있는 개방성은 무엇에 연유할까 하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전승은 저들의 조상 자신들보다 더 큰 어떤 사실에 더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얼핏 보기에 단순하고 소박한 서술들을 자세히 보면 뚜렷한 붉은 줄이 그어져 있음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인도와 축복'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구약학자들은 이 족장 이야기들이 많은 자료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사실과, 그것은 저들의 전기로 서술된 것이 아니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무엇보다도 비전문가에게 충격을 주는 결론은 아브라함—이사악—야곱이 혈연적 계보가 아니라 각 족장들의 신앙의 계보를 나타낸다는 사실이다.10)폰 라트, 앞의 책, 171~1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