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cover_A_1s

    3. 하느님과의 계약

by 운영자 posted Sep 03,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3. 하느님과의 계약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보면 신의 종인 '파우스트'가 악마인 메피스토텔레스(항상 否定하는 영)와 계약을 하는 장면이 있다. 내가 누구와 계약을 한다는 것은 상호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사의 또 하나의 전승자료에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는 사상으로 저들의 종교 또는 윤리 생활을 이해한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은 이야기이다.13)출애굽기 19, 20, 22- 23'상은 통칭 계약의 법전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시나이 산의 계약내용이 농경지의 상황을 전제하고 있으며, 다른 자료인 여호수아 24장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집약하고 있는데, 시나이 산의 사건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출애굽 도상의 사건이 아닌 독립된 사건이라 본다. 출애굽기 19장부터 끝장까지는 시나이 산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중복이 많고 율법에 대한 설명과 사제법의 실행과정 등이 혼합되어 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자료로 편집된 결과에서 왔다는 증거이다.

너희는 내가 에집트인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너희를 어떻게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로 데려왔는지 보지 않았느냐? 이제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애 19, 4~6).

이것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받은 말씀이다. 모세는 이 말씀을 이스라엘의 대표들에게 전달한다. 저들은 일제히 응답하여 하느님이 명한 대로 할 것을 맹세한다. 모세는 이 사실을 다시 하느님께 전달한다. 이에 하느님은 마침내 율법을 선포한다. 모세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재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후기 유다교에서는 이 하느님과의 산 관계가 후퇴되어버림으로써 율법만이 앙상하게 남아서 오히려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올가미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율법의 본래적 성격은 장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이것은 하느님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도덕률 같은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을 주체적인 파트너로 인정하고 그의 결단을 촉구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거부권도 동시에 인정한 것임을 말한다. 이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의 주권을 이미 전제로 한 '나'와 '너'의 관계이다.

둘째, 율법은 자연법이나 관습법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서 체결된 약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 자체의 조항 보다 앞서 있어야 할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이다. 물론 율법의 내용을 보면 자연법이나 관습법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그대로 영원한 법칙으로 인도하는 것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뜻과 뜻의 응답으로 받아들이는 것과의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율법은 관계에 있어서 약속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편이 일방적으로 폐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영원한 법칙이 아니라 쌍방의 합의에 따라서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위와 관련해서 주목할 것은 이 율법은 그 자체가 종착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의 성취를 위한 약속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것은 정착된 자에게 주어진 계율이라기보다는 도상(塗上)에 있는 존재, 즉 약속의 성취로 향하고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넷째,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선민사상(選民思想)이다. 저들은 이 하느님이 세계의 하느님임을 안다. 그러나 그 하느님이 미미한 민족과 계약했다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역사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기들을 동역자(同役者)로 선택했다는 절대적인 신앙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적인 우월감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아니,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자유로운 능동적인 선택에 의거한 것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하느님 앞에서 있는 한 민족의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의 발로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과 자각은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이러한 독특성이 이 민족을 통해서 마침내 세계 역사의 방향을 전환하게 한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고 이에 이스라엘이 응답한 계약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