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장에 십계명(Dekalog)이 있다. 이것만이 시나이 산 현시(顯示)설화와 관련된 것이고(베스터만), 그 뒤의 것은 그것을 해석한 것이다. 신명기 5장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근본적으로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그것은 이것이 그만큼 이스라엘 민족 형성에 기둥이 되는 것임을 말한다.
십계명은 우선 그것을 주는 하느님이 누구인지부터 소개한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에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출애 20, 1~2).
이 하느님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 출발에 깊이 개입하신 분이다. 그는 '종살이'에서 해방시킨 이다. 이같은 해방자인 하느님이 해방받은 이스라엘과 계약하는 내용을 공포한 것이 십계명이다. 계명의 상반부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취할 행태, 하반부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취할 행태에 관한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유리시킬 수 없는 유기적 연결을 가진 것으로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임을 전제한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예배' 또는 '제사'로서 이루어지고, 이웃과의 관계는 별도의 일이라고 판단한 유다교에 대해서 예수는 이 둘을 한데 묶었다(마르 12, 28~34). 그러므로 하느님은 역사에서 유리되지 않으며 하느님을 믿는 행위도 역사적 행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반부의 초석(礎石)은 하느님 이외의 어떤 것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우주 안에 어떤 모양도 만들어 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 아닌 것을 하느님처럼 만들어 섬기면 그것이 바로 우상(偶像)이다. 그것은 외형적인 것에만 국한하지 않고 어떤 지위나 구조나 사상(이데올로기) 따위를 절대시하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이것은 하느님 앞에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을 없애기 위한 쐐기이기도 하다. '하느님만'의 투쟁은 이스라엘 전(全)역사를 통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판가름했다. 언제든지 이 '만'을 이탈했을 때 우상이 생기고 타락이 왔고 따라서 화가 미쳤다. 이스라엘이 위대했다면 이 '하느님만'을 일관했기 때문이며, 이스라엘이 망한 것이라면 바로 이것을 위반한 민족의 본보기가 된 셈이다.
후반부는 더불어 잘사는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이웃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일이다. 그중에도 특히 강조된 것은 약자, 가난한 자들의 권익을 지키는 일이다. 벌써 맨 처음 서곡이 이 점을 강조할 체제다. 종살이하던 과거를 상기시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하느님이 어떤 이인가를 말하는데, 동시에 그것을 받는 자에게 주는 명령도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것은 안식일법 명령에 잘 나타나 있다. 안식일은 바로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고 쉰 날이니까 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아들, 딸, 남종, 여종, 집안에 머무는 식객(유랑인), 심지어 짐승까지 쉬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고용된 자, 그리고 권리 없는 자들을 옹호하려는 사회법이다. 이 안식일법이 발전해서 안식년제도가 생기고 희년제도로 발전했으며, 후에는 희년을 메시아 왕국에 대한 구체적인 본보기로 삼게 된 것이다.
그 외의 계명들은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 강자에게 주는 계명으로 보아야 한다. 간음, 살인, 탐냄도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더 가능성이 많다. 가령 다윗왕은 그의 부하인 우리야의 아내를 탐내어 간음하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그를 전선에 내보내 살인했다(삼하 11장). 계약법전을 위시한 중요한 법전은 가난한 자를 위한 계명으로서 이런 사실을 분명히하고 있다.
출애굽기 19, 20, 22~23장은 계약법전이다. 그 법의 핵심은 강자로부터 약자, 부한 자로부터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 우선 23장 1~19절을 보자. 이것은 십계명의 '거짓 증거'가 누구에 의한 것인가를 밝혀준다.
너희는 근거 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죄 있는 편에 합세하여 권세 부리는 자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지 말아라. …… 너희는가난한 자가 낸 소송사건에서 그의 권리를 꺾지 말아라. 허위 고발을 물리쳐라. 죄 없고 올바른 사람을 죽이지 말고 악한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하지 마라(출애 23, 1-7).
이것은 강자 편에서 거짓 증거하지 말고, 집권자가 강자의 편을 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약자나 가난한 자를 저들의 횡포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과부와 고아를 괴롭히지 마라.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 그들이 나에게 울부짖어 호소하면 나는 반드시 그 호소를 들어주리라. 나는 분노를 터뜨려 너희를 칼에 맞아 죽게 하리라(출애 22, 21~23).
여기서 지시한 '너희'는 말할 것도 없이 강자다. 강자는 가난과 무력의 상징인 과부와 고아를 괴롭힐 위치에 있다. 만일 이들에게 억눌린 자들의 호소가 들릴 경우 죽여 버리겠다는 경고다. 이것은 물론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이 법전은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었으면 채권자 행세를 하거나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며, 가난 때문에 한 벌밖에 없는 옷을 저당 잡히는 자를 보호하라고 한다(출애 22, 24~26). 그뿐 아니라 의탁할 곳 없는 사람들(ger)을 학대 못하게 한다. 바로 이러한 가난한 자를 위한 제도적 법제정이 안식일과 안식년의 설정이다(출애 23, 10~12).
물론 구약이 일관해서 가난한 자의 편에 서도록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십계명은 이 계약법전의 기본정신의 틀 속에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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