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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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스라엘 종족동맹

by 운영자 posted Sep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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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스라엘 종족동맹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B.C. 1220년경에 비로소 등장한다(침멀리). 그런데 약 200년을 지켜온 이 시대에 대해서는 신명기 사가들의 손에 의해서 편집된 문서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가나안 정착시기와 관련시킨 것으로는 여호수아기와 판관기가 그 자료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 종족동맹의 중심은 농민들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끝자에 해당하는 엘신(EL 神)과 그리고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야훼가 구원한다'라는 뜻에서 보는 대로 야훼신의 이름이 한동안 함께 쓰여지다가 빠른 속도로 야훼로 통일된다. 이것은 바로 신을 다르게 부르는 종족들이 모여서 한 동맹을 이루고 공동체생활하는 동안 신앙적으로도 동화된 흔적이다. 판관기 2장 6절~3장 6절에서는 그들의 신앙이 집약된 행태를 볼 수 있다.

첫째, 그 시대 사람들은 야훼가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한 사실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는 점이다. 이것은 일제하에서 해방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의 815 이후 세대를 연상시킨다. 야훼는 추상적인 한 신의 이름이 아니라 이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행위로 그 뜻을 편 분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체험을 못하면 그 분을 모르게 된다. 따라서 그 시대 사람들은 야훼와 다른 신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 주변 종족들의 종교에 쉽게 감염되었다. 바알, 아스다룻 등이 그런 신들의 이름이다. 둘째, 야훼는 결국 그들을 벌한다. 그 벌은 이스라엘의 적의 손을 빌려서 시행된다. 이로써 저들은 궁지에 빠져 비명을 지르고 구원을 청한다. 셋째, 야훼는 분노의 매로써 벌하면서도 그 같은 벌을 통해서 저들이 야훼의 구원을 직접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 구원은 저들을 '약탈자의 손에서 건져냄'이다. 넷째, 그런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인물을 뽑아 일으켜세운다. 일으켜세웠다는 것은 바로 그들과 '함께 함'이다. 저들은 에집트의 압제에서 탈출한 합비루이거나 아니면 가나안의 여러 군주들 밑에서 농노(農奴)로 있다가 이에 저항하여 봉기하여 결성됐든지간에 어쨌든지 군주제에 저항하고 탈출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 공동체는 반군주적 공동체를 지키려고 했음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야훼만'이 저들의 기치였다. 이것은 인간 위에 어떤 지배자도 배격한다는 정치적 결단이 내포된 것이다. 이 공동체는 주로 농민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저들이 주로 농노였던 것을 입증한다.

가나안에는 많은 군주국들이 있어서 늘 공격을 받았고 그것을 격퇴하는 체제로는 군주제가 유리했을 터이나 저들은 끝내 야훼의 통치 외에 어떤 것도 군림할 수 없는 체제를 지켜왔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의 상임지배자도 거부했고 또 별도로 군대 설치를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지나다가 외세의 침범을 받게 되면 이른바 판관이 등장한다. 판관은 계급을 나타내는 신분이 아니고 그때그때 야훼의 카리스마를 받은 인물들이다. 왼손잡이 에훗, 목동 삼갈, 농사꾼 기드온, 창녀의 자식 입다 등이 판관으로 등장한 것은 이런 점을 말한다. 그중에는 예언자로 알려진 여인도 있고 나면서부터 신에게 바쳐진 삼손 같은 이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하느님의 세우심과 동시에 초인적 능력을 부여받는다. 판관은 히브리어 '샤파트'(Shofet)라는 어근에서 온 것으로 '재판한다', '지배한다'는 뜻이 있다. 저들은 재판을 하고 전쟁을 지휘한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에 처했을 때나 부르심을 받았을 때뿐이다. 저들의 능력은 당면한 위기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데 쓰라고 주어진 힘이다. 그러므로 판관 밑에 결속된 사람들이 방어전을 수행한 다음에는 모두 본래의 일상생활로 돌아가듯이, 판관도 고향과 본래의 일터로 돌아가 초야에 묻힌다. 고고학에 의하면 그들의 유적에는 성벽이나 지배자의 공관 따위가 진행되는 공공건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살던 집은 거의 비슷한 크기였다(빌켈슈타인)는 것이 이 종족동맹이 어떤 성격이었나 하는 것을 입증해준다.

일단 전쟁만 끝나면 판관이 됐던 사람만이 아니라 전쟁에 참여했던 모두가 제 일터로 돌아갔다.

이스라엘아! 각기 자기 장막에 돌아가라.

이것은 위기를 극복한 다음에 반복되는 지시다. 그러므로 행정체제로서의 정부나 상설의 사령부 같은 것도 없다. 그런 뜻에서 판관은 신분적 지배자도 체제 위의 지배자도 아니다. 아마 중국의 전설적 임금인 요순(堯舜)의 시대가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다스리지 않는 것으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체제는 반국가(Antistate)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오직 야훼만의 정신을 구현하는 중요한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