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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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by 운영자 posted Sep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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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다. 그래서 다시 야훼께서는 그들을 40년 동안 불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셨다"(판관 13, 1). 그때 마노이라는 사람의 아내에게 삼손이라는 아이가 주어졌다. 그에게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다. 그 아이가 비로소 이스라엘을 불레셋 사람들 손에서 건져낼 것이다"(판관 13, 5)라는 신탁이 내렸다. 여기까지는 다른 판관 임명의 동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의 행적에 대한 서술은 다르다.

그는 20년 동안―불레셋시대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판관(판관 15, 20)이라 했는데, 공적으로 전쟁을 지휘하거나 또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장면은 한 번도 없고, 꼭 현대인이 묘사하는 슈퍼맨처럼 홀로 초인적인 힘을 발동한다. 그 내용은 뚜렷한 민담이다. 거기에는 어떤 목적추구도 가치평가도 없고 웃음만을 자아내게 할 뿐이다. 그는 신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랑곳없이 불레셋 여인에게 반해서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결혼을 강행하다 봉변을 당하고 화풀이를 한다. 할례 받지 못한 오랑캐인 불레셋 여인 들릴라에게 빠져서 비참하게 최후를 마치나, 그의 죽음으로 불레셋의 지도층을 몰살하는 장엄한 최후를 마쳤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민담에는 간간이 해석이 첨부되어 따른다. 바로 그 해석이 중요하다. 삼손이 불레셋 여인과 결혼하는 행위에 대해서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 일이 모두 야훼께서 하시는 일인 줄 몰랐다. 그 때는 불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때였기에 야훼께서 불레셋 사람들을 칠 구실을 마련하려는 것이었다"(판관 14, 4)는 주(託)가 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경륜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확신이다. 따지고 보면 그가 하는 일의 결과를 장본인도 몰랐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상 그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그러나 삼손이 초인적인 힘을 낼 때마다 "야훼의 영에 사로잡혀"라는 주를 달고 있다.

이렇게 삼손은 하느님의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마침내 들릴라의 배신으로 그의 힘의 근원인 머리를 깎임으로써 불레셋 사람들에게 체포되어 눈이 뽑히고 노트르담의 곱추마냥 놋사슬에 매여 연자맷돌을 돌려야만 했다. 그러다가 불레셋의 모든 추장들이 모인 축제에 이끌려나가 희롱의 대상이 되는 기회에 그는, "주 야훼 여, 한 번만 더 저를 기억해주시어 두 눈을 뽑은 불레셋 사람들에게 단번에 복수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부르짖는다. "한 번만 더" 마지막 삶을 바치면서 애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전을 무너뜨리고 그 안의 원수들을 모두 깔려 죽게 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안병무, 「삼손, 프로메테우스, 예수」, 『현존』 제57호(197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