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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6. 심판과 새 가능성―예레미야

아시리아는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지방 대부분을 점령했거나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만들었으며, 급기야는 에집트까지 정복함으로써 그 번영의 극치를 이루었다. 아시리아에 의해서 오리엔트가 통일 되어 세계제국이 건설되었는데, 그로 인해서 여러 민족국가가 붕괴되고 전통문화가 도말(塗抹)되는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라져갈 운명에 놓인 고대 여러 제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아시리아는 저 유명한 니느웨(Nineveh)에 대도서관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후에 새로운 제국들이 일어났는데, 그중에 가장 큰 변혁을 가져온 대제국은 신(新)바빌론 제국이다. 신바빌론 제국의 출범은 이스라엘에 한 전환기를 가져왔다. 이른바 요시아 종교 개혁운동이 이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로 이 새 세력에 의해서 B.C. 587년에 멸망을 당하게 되었으며, 세 차례에 걸쳐서 지도층과 엘리트들은 대부분이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을 당하게 되었다.

이 같은 역사의 한가운데서 민족과 더불어 울며 싸우며 위로하고 심판의 선언을 하며, 마침내는 자기의 생명을 내던지며 사랑하는 동족의 손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40년의 수난의 길을 걸어 가야만 했던 예언자가 예레미야이다.

B.C. 7세기 전반에 아시리아의 제국 밑에서 어용정책으로 연명하던 므나쎄왕의 장기집권을 뒤이어 아몬왕이 즉위 2년 만인 B.C. 640년에 궁중혁명에 의해 사살되고, 8세밖에 되지 않은 요시아를 왕으로 옹립한 것(열왕하 21, 123~24장)은 이미 아시리아의 세력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신호이다. 이 혁명의 주체는 야훼종교의 전통을 이은 이들이었다. 저들이 궁전의 관리들을 물리치고 자기들의 뜻대로 새 왕을 세웠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렇게 옹립된 요시아왕 18년(B.C. 622년)에 저 유명한 종교개혁이 진행되어 30년간은 그 혁명의 주체가 주도적 역할을 했는데,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고고히 등장한 것은 그 이전인 B.C. 626년이었다. 그때 그는 겨우 20대 초반이었다.

그가 소명을 받은 기록이 예레미야서 1장 4~9절에 있는데, 그 요점은 그를 택한 것이 하느님 자신이라는 것과, 그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세계(만국)의 예언자로 선택됐다는 것이다. 그가 이 같은 사명을 지시받을 때 자신이 "아이 "이고 "말을 못한다"고 하면서 도피하려고 하는 것은 모세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리고 그가 선 현장과 그의 과제는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이스라엘을 둘러싼 국제관계에 있다(시대배경사는 군네벡의 『이스라엘 역사』 9~10장 참조). 그에게 보여준 환상은, "부글부글 끓는 솥물이 북쪽에서 쏟아져 내리려 하는"(예레 1, 13) 것이었다. 이것은 스구디아(Skythen, Scythians, 러시아 지방에서 내려와서 지중해와 흑해 사이의 지역에 살던 족속)의 침략(B.C. 626년)이라는 구체적인 위협 앞에 선 그의 임무를 말한다.

요시아의 종교개혁은 열왕기하 22~23장에 서술되어 있다. 요시아 18년에 대사제 힐키야가 성전에서 '법전'을 발견하여 요시아왕에게 전했다. 그것은 현재의 신명기 12~26장에 수록되어 있다. 요시아왕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대표들을 성전에 모이게 하고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게 한다. 이것이 종교개혁인데, 내용은 결코 새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율법을 재확인시킨 것이다. 그 내용은 출애굽기 20~23장의 것을 대부분 수록했다. 그것이 계약의 성격을 띠는 것은, 그 내용을 실천 못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고 이제부터라도 철저히 하면 위기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요시아시대의 종교개혁은 다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성전의 권위확립이다. 예루살렘 성전에 침두된 이교적(異敎的) 요소를 배제한다는 것은 오랜 아시리아 치하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그 외에 산재해 있는 온갖 이교적 제단을 파괴해버린 것이다. 베델 제단과 사마리아 지역에 있는 제단의 집중적 파괴가 바로 그것이다. 그 대신 예루살렘을 유일한 성도(聖都)로 재천명했다. 그곳은 종교의 중앙집권체제 수립의 거점이다. 이스라엘 본래의 성소는 세겜이었다(신명 27, 12~13; 민수 8, 30~35). 따라서 사마리아는 그곳을 성소로 고집해 온 데 대해, 요시아는 다윗 전통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유일한 성소로 정착시키려 한 것이다.

둘째는 모세 율법의 권위를 재수립하는 일이었다. 왕도(신명 17, 14~20) 예언자도(신명 13, 1~518, 15~22) 율법에 종속된다.

셋째는 이스라엘 민족사를 편집, 기술하는 일이다. 이 역사의 서술에 투신하는 이들은 이 종교개혁의 중추인 이른바 신명기학파라는 그룹이다.

예레미야는 요시아의 종교개혁을 전폭 지지했다. 그는 그 '계약'에 따르지 않으면 저주받을 것이라고 했고,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 이 외의 모든 제단 파괴도 지지했다. 그 결과로 자기의 고향인 아나돗 사람들에게 암살당할 뻔했다(예레 11, 18). 왜냐하면 저들의 성소가 파괴되게 한 장본인이 예레미야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요시아왕은 아시리아 손에서의 해방을 목적으로 바빌론에 기대를 걷고 있었는데, 아시리아의 동맹세력인 에집트의 손에 의해서 요절했다(열왕하 23, 29~30). 이로써 그의 민족중흥의 꿈은 깨어졌다. 이에 대한 예레미야의 슬픔은 대단했다(예레 22, 10 참조)

한편 에집트에 의해 세워진 여호야킴왕(B.C. 609~598년 재위)은 요시아 선왕의 정책을 역행했다. 이때부터 예레미야의 본격적인 고난의 삶이 시작되며, 동시에 예언자로서의 면모가 뚜렷해진다. 그것은 한마디로 진실 앞에 목숨을 내거는 증인의 모습이다.

예레미야는 망국의 현실을 그대로 폭로하며, 그 같은 운명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궁전 귀족계층이나 지배층에 대해서 가차없는 '선고'를 해야 하는 비운에 처했다. 예레미야 7장은 그의 그러한 입장과 비탄을 전하고 있다.

이것은 야훼의 성전이다, 야훼의 성전이다 한다마는
그런 빈말을 믿어 안심하지 마라(예레 7, 4).

이것은 빈말이고 자기 속임수다. "유랑인과 과부와 고아를 억누르고", "죄없는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며", "다른 신을 변형해서 섬기는 한, 성전의 제사"는 공허한 것이다. "훔치고 죽이고 간음하고 위증하고 바알에게 분향"하면서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한 안심하는 태도는 저주를 앞당길 따름이다. 예레미야는 저들을 위해 빌거나 기도하지 않았다. 이들은 수난을 당해야 하며 그때에야 비로소 그 속에서 하느님을 찾겠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 예루살렘의 파괴를 선고(예언)했다(예레 19, 1~15). 이 때문에 그는 왕궁에 감금되고, 성전으로의 접근을 금지당하기도 했다(예레 20, 1~6). 예레미야 26장은 그의 수난기의 한 토막이다. 그는 군중에게 살해당할 위기에까지 이르렀으며, 그의 반대파와 지지파 사이에서 고통을 당했다.

바빌론에서 느부갓네살이 왕위에 오르자 유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여호야킴은 신흥세력인 바빌론에 대해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것에 저항하려는 무모한 자세를 갖추고 있었기에 그와 입장이 다른 예레미야를 연금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연금상태에서 그의 제자 바룩을 시켜 바빌론에 대한 무모한 저항을 견책하고, 하느님이 느부갓네살을 시켜 유다를 멸망케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자기 나라의 멸망을 선고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진정 자기 민족을 사랑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이른바 '불구원'(不救援)의 예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호야킴 왕은 분노하여 그의 글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고 한다(예레 36, 20~26). 그러나 피신한 그는 거듭 '불구원'을 선고 했다. 이에 대해 왕은 체포령으로 응수했을 뿐이다.

마침내 불행히도 그의 예언이 적중되어 B.C. 589년 예루살렘에 침입한 바빌론은 왕족을 위시한 지배층을 체포해갔다. 이것이 제1차 포로유수(捕虜幽囚)이다. 그후 B.C. 587, B.C. 581년 등 세 차례에 걸쳐 포로로 끌려갔으며, B.C. 586년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버렸다.

바빌론 군이 문턱에 닿아 있을 때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기적을 기대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러한 기대를 뒤엎어버렸다. 아니, 기적은 오지 않는다, 하느님의 인내는 이제 끝이 났다, 이제 이스라엘에게는 심판이 임했다, 그러니 적에게 투항하라고 했다. 이것은 가장 어려운 고언(苦言)이며, 이스라엘 민중의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는 권고였다. 그러면서 그는 하느님이 이 고난에서 곧 구해주시리라는 거짓 예언자들의 얕은 속임수에 저항하면서 평화, 평화하지만 평화는 없지 않느냐고 맞선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직시하고 그 다음의 과제를 위한 결단을 방해하는 이러한 거짓 위로를 용납하지 않았다. 예언자는 민중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만을 하는 이가 아니다. 민중의 기대가 어디 있든지 이에 관계없이 진실을 말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지금의 상황에서 하느님의 심판이 결정된 것을 직시하고 이 현실을 긍정할 것을 촉구했다. 비참한 이 현실을 현실 그대로 긍정하라는 것은 모든 것에 대한 체념을 뜻하지 않는가? 그러나 예레미야는 바로 이 현실에서 오히려 하느님을 보라는 것이다. 순탄한 길 위에서만 하느님의 인도를 말하는 것은 참 신앙이 아니다. 좋은 여건이 하느님의 인도를 헤아리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아니 비운(悲運) 속에서도 하느님의 인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비운이 비록 심판이라고 해도 그의 인도의 손길을 멈추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운 속에서 하느님의 참뜻을 찾아라! 이것이 예레미야의 부르짖음이다.

바빌론은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포로가 된 저들에게는 두 가지 이해만이 있었다. 하느님이 이 민족을 버렸다, 그러면 모든 것은 끝났다! 그것이 아니면,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한다, 그러므로 그는 곧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할 것이다. 기다리자! 예레미야는 비운 속에서 하느님의 인도를 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관망하거나 기다리라는 뜻은 아니다.

예레미야 29장에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보낸 예레미야 자산의 편지가 전해지고 있다. 그 편지 서두에서 그는 포로가 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집을 짓고, 전원을 만들고, 결혼하고, 자식을 기르라고 한다. 그것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권고다. 그러나 이것은 막연히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꿈꾸면서 현재의 상황에서 할 일을 등한히 하는 저들에게 한계상황으로서의 지금에 눈을 돌리게 하는 중요한 권고다. 예레미야의 이 권고는 무엇인가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말하였던 전통적인 예언자답지 않다. 그러나 전통이란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상황에서 결단을 통해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권고는 체념하고 살라는 뜻이 아니다. 아니, 이렇게 억눌린 상황에서도 지금의 할 일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금 심판을 받고 있다. 이 사실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그는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의 미래와 희망을 말한다. 과거의 사실들이 오늘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새로운 미래는 온다. 이 두 사실은 현재가 무엇을 의미하며 그 과제가 무엇임을 잘 알려주고 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비운의 상황 속에서 중요한 계시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하느님과 맺었던 계약을 저버렸다. 그러므로 만회할 수 없는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이미 깨져버린 그릇과도 같다. 그러면 하느님은 그의 약속을 포기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느님은 끝끝내 하느님과 그의 백성과의 약속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길이 가능한가? 여기서 예레미야는 두 가지 사상을 제기한다. 하나는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새로운 계약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는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가문과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 나 야훼가 분명히 일러둔다. 이 새 계약은 그 백성의 조상들의 손을 잡아 에집트에서 데려 내오던 때에 맺은 것과는 같지 않다. 나는 그들을 내 것으로 삼았지만, 그들은 나와 맺은 계약을 깨뜨리고 말았다(예레 31, 31~32).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볼 때 획기적인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과거의 모든 역사에 대한 부정이며, 새 역사의 출발을 선언하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는 에집트에서의 탈출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나, 이제 선언된 새 역사는 자기의 전통에서의 탈출을 그 기원으로 삼는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느님과의 계약관계에서 이루어진 역사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이 계약을 파기해버린 것이다. 이것으로 그 역사는 끝나는 수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출발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신앙이 이 사상에 약동하고 있다. 그러면 새 관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날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줄 내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31, 33).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법을 마음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요시아의 종교개혁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요시아의 개혁은 새로운 공동체의 법령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개혁은 이스라엘의 국권의 상실과 더불어 좌절되었다. 이제 저들을 한데 묶는 국체(國體)는 없다.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제는 하느님과의 계약의 단위가 전체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개인 개인이어야 한다. 이러한 혁명적인 사상이 여기에 싹트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스스로를 새로운 계약에 의해서 이루어진 새 이스라엘이라고 했다. 그런데 저들은 공동체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하느님과 관계를 가졌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본 미래는 바로 그리스도인에게서 이루어진 셈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편에서 보면 좌절되어야 할 역사이다. 그러나 하느님 편에서 보면 그것은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될 것이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전체가 부패할 때 적은 무리를 통해서라도 다시 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레미야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라도 하느님은 자기의 뜻을 역사 안에서 이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참고문헌

김재준, 「전기적으로 본 예레미야의 내면생활」, 『김재준 저작전집』I(한국신학대학 출판부, 1971).

______, 「위대한 종결―예레미야의 최후」, 『김재준 저작전집』 1.

문익환, 「예레미야 연구」, 『기독교사상』 제19~25호(1959. 3~10).

서인석, 「예레미야의 고백」, 『神學展望』 제28호(1975. 봄).

모두, H., 「예레미야와 하나니야와의 대결」, 『 신학사상』 제58호(19887.가을).

케글러, W., 「 예언자의 말씀과 예레미야의 정치적 행동」, 『작은 자들의 하느님 : 구약편』(기민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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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한국어로 된 성서 연구 참고문헌
전집간행에 부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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