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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8. 너 위한 수난―이름없는 예언자

바빌론 포로생활은 이스라엘에게 체념을 배우게 했다. 더 이상 자기 주권을 찾는다는 기대를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한된 영역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정착하려고 했다. 이것은 우리의 일제 36년의 역사를 연상하면 된다. 일제치하의 초기에는 반발도 했고, 다시 주권을 찾으리라 기대했지만 31사건으로 잔인하게 두들겨맞은 이후부터는 날이 갈수록 체념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어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고 생각한 일부 민족의 지도층은 변절하기까지 했던 것과 흡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치적 주권에 대해서는 체념상태에 있었지만, 그 대신 야훼종교 신앙공동체로서의 민족으로 양상을 바꾸어나갔다. 그들은 민족이 포로가 된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민족정신의 바탕이 될 그들의 역사를 편집,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하여 신명기를 위시해서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 등이 빛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민담형식의 이른바 J전승, E전승도 이때 정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포로생활은 비참했으나 그들의 정신만은 저항과 자기수호로 일관되었다. 그 정신적 단면이 시편 137편에 전해지고 있다.

세계제국 바빌론은 갑자기 거꾸러졌다(B.C. 539년). 영원히 하늘로 뻗을 줄만 알았던 아름드리 거목이 하루아침에 쓰러진 것이다. 그것은 신흥국가인 페르샤의 왕인 고레스(Kores, B.C. 539~529년)에 의해서였다. 바빌론의 판도와 유산을 고스란히 이양받은 고레스는 그 다음해인 B.C. 540년에 이른바 칙령을 반포하여, 그 산하의 모든 민족의 신들을 원산지로 되돌리고 그 민족들을 해방시켰다.18)이 무렵을 서술한 글이 에즈라서이며, 즈가리야서도 그것을 반영한다.

이 무렵에 이스라엘과 운명을 같이한 예언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숨은 인물로서 그의 뜻을 담은 글만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데 이사야 40~55장에 첨부된 것이 그것이다.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학자들은 편의상 그를 '제2이사야'라고 부른다.

그의 글은 두 묶음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은 바빌론 몰락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후반(49~55장)은 돌아갈 준비와 귀국, 정착을 보도하는 것이다. 그중에 돌아갈 희망에 부푼 표현들은 마치 개선장군의 귀환준비와 같이 들린다.

한 소리 있어 외친다.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이 오신다.
벌판에 큰길을 훤히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 길을 넓혀라.
야훼의 영광이 나타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뵈오리라'(이사 40, 3~5).

그 귀환은 이스라엘의 귀환이기 이전에 야훼신(神)의 이동을 의미한다.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이동했던 야훼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성서의 기자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역사 해석이다. 이 익명의 예언자는 새 역사의 장이 열리는 것을 고지하는 사명을 기쁨에 겨워 외친다.

반가워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외치며
'너희 하느님께서 왕권을 잡으셨다'고
시온을 향해 이르는구나.
들어라 저 소리, 보초의 외치는 소리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야훼와
눈이 마주쳐
모두 함께 환성을 올리는구나(이사 52, 7~8).

그들의 귀환은 홀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제힘으로 국가를 재건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왕권수립을 뜻하는 것이다.

그때 돌아온 사람은 4만 2천 명이다(에즈라). 이것은 물론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 전원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포로지에서 이루어놓은 생활터전을 버릴 수 없었고 또 귀환 후에도 아무런 보장이 돼 있지 않았기에 그런 모험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귀환민들은 이사야가 기대했던 '남은 무리'가 되는 셈이다. 저들은 그 동안 비록 이방이지만 구축해놓은 생존의 터와 가진 것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야훼의 왕권수립'을 위해 돌아오는 것이다.

돌아온 그들은 다시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의식을 시작했고(에즈 3장), 곧 이어 B.C. 537년 성전재건에 착수했다. 그러나 저들은 새 시대의 건설에 동참하려는 잔여자(사마리아인)들의 동참을 거부함으로써 내분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결국 후에 유다와 사마리아 간의 결렬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다. 그로 인해 성전건축이 중단됐다가, B.C. 520년에야 비로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제2이사야는 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의 글에서 중요한 것은 이른바 '주의 종'에 대한 서술이다.

이른바 '종의 노래'는 네 묶음으로 서술되어 있다(이사 42, 1~449, 1-650, 4-952, 13-53, 12). 그중에 마지막 것은 '수난의 종의 노래'로서 가장 유명하다.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피해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주었구나.
……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 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 신세를 걱정해주는 자가 어디 있었느냐?
……
그는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하고
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다(이사 53, 1~10).

이 억울한 수난자는 누구인가? 익명의 예언자 자신일까, 아니면 그 시대의 어느 누구일까? 아니면 과거의 누구일까, 아니면 기다리는 미래의 메시아상일까, 아니면 이스라엘 공동체의 수난의 역사를 말하는 것일까?19)이것은 아직 많은 異見아 그대로 맞서고 있다. E. 젤린G. 포러, 김이곤 외 공역 『舊約聖書槪論』, 대한기독교출판사, 1978, 448면 이하 참조.

여기서 그 문제에 대해 논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고난에 대한 이해이다. 특히 그것이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와 결부될 때 중요한 의미가 있다. 비록 어느 개인의 운명을 해석한 것이라고 해도, 그 개인의 운명이 이스라엘의 고난을 압축한 것이라고 볼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선택된 민족이라면 왜 수난을 받아야 하나? 모든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과의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수난당한다고 해왔다. 그러나 그런 소극적인 의미밖에 없을까? 그렇다면 하느님은 인과율의 하느님 이상이 아니지 않는가? 벌을 주는 하느님말고 구원의 하느님은 어디 갔는가? 수난이 있는 곳에는 구원의 하느님은 없는가? 수난의 적극적인 의미는 없는가?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수난은 소극적인 것이다. 수난자는 언제나 그 시대의 패배자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를 죄인이라고 치부하고 눈길을 돌리고 만다.

그러나 이 익명의 예언자는—그도 수난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익명이 아니겠는가?—수난의 의미를 적극적인 측면에서 계시한다. 그것은 자신 또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당하는 것이 아니라 너 또는 너의 죄 때문에 당하는 수난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 같은 수난을 보아온다. 그래서 희생이라는 말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자연에서도 그런 것을 본다. 썩는 것이 있어야 피는 것이 있고 심는 자가 있어야 거두는 자가 있다. 분명히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은 심은 자가 거둔다는 말일 수는 없다. 그런데 한 민족의 역사나 또 그 운명을 대신하는 역사를 그렇게 보고 해석한 것은 이 예언자가 처음이다.

함석헌은 그의 『뜻으로본 한국 역사』에서 한국사의 기조는 고난이라고 하고, 그 해석을 바로 위의 입장에서 전개하였다. 그는 이 세계의 하수구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가 겪는 고난의 의미라고 갈파하면서 기슴에 쌓인 한(恨)을 달래려고 한다.

그런데 예수의 사람들은 예수의 수난을 바로 이러한 각도에서 해석한다. 공관서의 수난사가 그렇다. 이것은 놀라운 정신사의 계승이요, 해석이다.

참고문헌

김찬국, 「제2이사야에 나타난 '천지의 주제'란 제의적 칭호와 창조전승」. 『신학사상』 제12호(1976. 봄).

이철우, 「이사야 40~48장의 구조에 대한 연구」, 『신학사상』 제55호(1986.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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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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