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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2) 예수와 민중

예수의 활동무대는 갈릴래아 지방이다. 그의 공생애의 출발부터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든다. 맨 처음에 씌어진 마르코복음은 이 사람들을 중요시한다. 그 서술에 있어서도 그 사람들이 어떤 이들인지에 주목하도록 유도하는 접근법을 쓴다. '사람들', '모두', '많이' 등으로 호기심을 돋우다가, 2장 4절에서 그들의 정체를 비로소 밝히려는 듯 그들이 바로 오클로스(ochlos)라고 한다. 그로부터 지시대명사를 빼고도 무려 36회나 이 개념이 사용된다. 우리말로는 '무리'라고 번역된다.

그리스어에서 오클로스는 라오스(laos)와 구별된다. 라오스는 민족과 같은 집단의 일원을 말하는 것으로 '국민' 또는 '백성'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오클로스는 어떤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무리'이다. 그것을 편의상 국민 또는 민족과 구별하여 '민중'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은 라오스라는 단어를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뜻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고 있다. 그런데 마르코는 바울로 등이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오클로스로서 예수를 따르는 민중을 표시한다. 그는 라오스를 인용문에 한 번(7, 6), 그리고 율법사가 한 말(14, 2) 외에는 사실상 사용한 적이 없다는 사실로 보아 이 단어를 의도적으로 채택했다고 할 수 있다. 마르코를 대본으로 한 마태오나 루가의 경우는 좀 다르다. 마태오에는 오클로스가 약 51회이고 라오스는 겨우 13회인데, 루가에는 오클로스가 40여 회, 라오스가 35회 가량 된다. 이 두 편자가 복음서를 쓸 때는 이미 그리스도교회 의식이 강해져 그리스도인들을 오클로스보다는 라오스로 표시함으로써 민중을 새 나라(교회)에 소속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나, 오클로스의 의미에서는 큰 차이가 없이 마르코를 따른다. 그러므로 마태오나 루가의 용어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내용상으로 볼 때에는 그 두 개념의 어느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으나 민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무수하다.

우선 마르코복음을 기준으로 오클로스라고 부르는 계층의 형태를 검토하고, 그들에 대한 예수의 행태를 보면 다음처럼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지적할 수 있다.

예수의 현장에 오클로스가 있으며, 오클로스의 현장이 예수의 현장이다. 예수가 가는 곳마다 많은 민중이 모여들어(2, 42, 133, 9204, 18, 110, 1) 그를 에워싸며(3, 325, 245, 31), 예수의 말씀에 감탄한다(11, 18). 사흘씩이나 굶으면서 예수를 따른 4천 명도 오클로스이며(8, 1 이하), 광야에서 굶주린 채 예수를 따르던 목자 잃은 양 같은 5천 명도 오클로스이다(6, 34 이하). 예수는 저들과 더불어 살고 저들을 가르치며(2, 134, 11 이하7, 410, 111, 18) 저들이 바로 진정한 가족이라고 선언한다.

예수가 그를 무조건 따르는 자들을 목자 잃은 양처럼 불쌍히 여겨서 먹을 것을 주었다고 했는데(6, 34 이하), 예수에게 모여든 이들은 세리, 천직(賤職), 병자 그리고 가난한 계층이었다(마르코에만 가난한 자 15회 언급). 저들은 그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로서, '죄인으로' 낙인 찍힌 자들이 대부분인 것은 오클로스라고 지칭한 구체적인 예로서 마르코 2장 13~17절을 들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예수를 따르던 그들이 오클로스인데, 그들은 바로 '죄인'과 '세리'이다(15절). 그리고 세리와 죄인이 소외자의 상징처럼 사용되는데, 그것은 마르코만이 아니라 Q자료(마태 11, 19)와 루가의 고유자료(루가 15, 1)에서도 볼 수 있다. 한편 마태오는 "세리와 창기"(21, 31)라고 하는데, 창기를 죄인의 상징으로 내세운 듯하다.

한편 예수는 "당신이 오실 그이냐?"는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대해서,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대로 요한에게 알려라. 맹인이 보고 절뚝발이가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루가 7, 22/Q)고 대답한다. 이 대답에서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관계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로 집약된다. 단지 죽은 자만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병으로 죽은 자일 수도 있고, 굶주려 죽은 자일 수도 있고, 폭력에 의해서 요절한 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만일 후기 유다교의 부활사상이 하시딤의 집단적 피살에서 발단된 것이 사실이라면, 예수 당시의 청중은 죽은 자를 살린다고 할 때 마지막 경우와 결부해서 이해했을 것이다. 더욱이 투옥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세례자 요한에게 결부시킬 경우 그렇게 이해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또한 루가복음에서 예수가 세상에 온 목적을 이사야서 인용으로 나타낸 것을 볼 수 있는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눈먼 사람들을 보게",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위해서라고 한다(루가 4, 18). 내용상 위의 것과 거의 같은데 여기서는 정치적 박해자를 특히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예수의 민중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 권력사회에서의 약자 그리고 병자로 집약된다.

예수는 민중을 가르칠 때 민중언어를 사용했다. 그의 언어의 독특한 것으로 비유들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구상어(具像語)인 민중언어이다. 그런데 이런 비유에서 주목되는 것은 사람을 계층적으로 대립시킨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제계층과 사마리아 사람(루가 10, 25 이하), 잃었던 아들과 집에 있었던 아들(루가 15, 1 이하), 부자와 거지(루가 16, 15 이하), 원한에 찬 과부와 악덕한 재판장(루가 18, 1 이하), 바리사이파와 세리(루가 18, 9 이하), 그리고 기득권자들과 거리의 떠돌이들(루가 14, 15 이하/Q) 등이 그렇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예수는 의도적으로 강자와 약자, 부자와 가난한 자, 또는 기득권자와 소외된 자 등을 대립시킴을 알 수 있다. 사마리아인은 유다 지방인의 입장에서 보면 소외자이며, 탕자는 겉으로 보기엔 모범생인 맏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배제될 대상이며, 그외의 것은 자연적 대립관계이다. 그런데 예수는 무조건 약자와 가난한 자, 소외된 자의 편에서 판결을 내린다. 그들이 바로 민중인 것이다.

큰 만찬 초대의 비유는 그 초청에 응한 사람들과 그것을 거부한 기득권자들을 대립시킴으로써 민중성을 잘 나타낸다. 기득권자란 가진 자이다(땅, 소, 아내). 그러므로 저들은 그 초청을 거부했다. 그에 대해서 초청에 무조건 응한 자들은 길가에서 배회하는 가난한 자, 불구자, 소경, 절름발이들이라고 했다. 역시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저들은 민중의 상징이다. 이렇게 저들은 기득권자와 대조됨으로써 무소유자들로 성격지어진다. 그런데 이 비유는 바로 '하느님 나라'의 비유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 비유는 하느님 나라가 현실적으로 민중의 것임을 선언하는 셈이다. 이것과 관련된 예수의 축복은 중요하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린 사람들은 복이 있다.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기뻐 웃게 될 것이다(루가 6, 20-21).

이처럼 축복의 대상은 바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자들과 권력에 억눌린 자들이다.

'가난한 자'(ptochos)라는 개념이 공관서에 자주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루가복음에서는 '가난한 자'가 자주 언급되어 큰 무게를 갖고 있다.20)루가에는 10회 나온다(4, 187, 2214, 3318, 2221, 3). 가난한 자는 예수가 가장 관심을 갖는 계층이다. 그것은 마태오에서 해석했듯이(5, 3) 정신적 빈곤 따위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빈곤인 것이다. 그런 뜻에서 루가는 '부요한 자'와 대조시킨 것이다. 아무튼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가난한 민중이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따른 4천 명이 3일 동안이나 먹지 못했다고 하는 지적은 간과해버릴 수 없는 대목이다. 예수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새나 초목도 먹이고 입히는 하느님을 믿으라는 뜻의 말씀(마태 6, 25 이하 / Q)을 하는데, 이것은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여기서 지적할 것은 이 말씀이 가난한 자를 청중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대목은 그날 그날의 끼니 때문에 고생하는 극빈자를 안중에 두었다는 뚜렷한 증거이며, 그를 따르는 민중의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민중은 프롤레타리아와 같이 좁은 의미의 개념이 아니다. "지금 슬퍼 우는 자"는 단순히 가난 때문이라고 볼 수 없고, 정치사회적으로 강자에게 유린당한 억울한 처지에 있는 계층을 반영한다. 이미 루가에는 예수의 소명이 가난한 자와 더불어 '눌린 자'와 '포로된 자'를 위한 것임을 밝혔으며, 마태오는 최후심판의 비유에서 가난한 자와 함께 '투옥된 자'를 언급함으로써 예수를 따르는 민중들이 권력의 탄압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나타낸다.

내가 내 친구인 너희에게 말한다. 몸을 죽이고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두려워 마라. …… 두려워 마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루가 12, 4~7/Q).

이것은 그 내용이나 형태에 있어서 가난 앞에 삶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과 똑같은데, 정치나 사회권력의 탄압 앞에서 두려워하는 민중을 반영한 것이다. 갈릴래아 지방은 정치적 우범지대로 유명했으며 젤롯당의 웅거지였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른 민중의 성분은 이런 지역성과 깊은 관계가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다만 세리는 정치적 대치관계에서 파생된 계층이나, 정치적 피해자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민족)적으로 볼 때 소외자임에 틀림없다. 이들도 예수의 민중 속에 계산되고 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끝으로 예수의 민중에서 병자들이 무거운 비중을 차지한다. 마르코는 출발부터 병자들이 운집한 것을 거듭 보고하며, 예수가 저들을 치유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병자는 경제적 가난과 정치적 약함과는 다른 이유로 소외된 자들이다. 예수는 이들을 치유하는 행위를 병마에서 해방시키는 일로 간주했다(루가 10, 16). 그는 귀신을 쫓는 이(Exorzist)로 부각되는데, 그것은 이 낡은 세대를 지배하는 악마와의 투쟁의 일환으로 행동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가난한 자, 약한 자, 병자―이들은 그때의 민중을 상징한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그 원인을 묻기 전에 저들을 무조건 영접하고, 저들과 더불어 살고, 저들의 편이 된 것이다. 그는 저들과 더불어 살면서 저들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비록 신의 권위로 엮어진 율법이라고 해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그 사회에서 윤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비판을 받고 공범자로 공격을 받는 것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이른바 저 '죄인'들과 식탁을 같이했다는 것은, 예수와 저들 사이에 아무런 간격도 없다는 것을 행동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한 그의 행태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라, 저 사람은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사람이며 죄인과 세리의 친구"(마태 11, 18~19/Q)라는 비난을 받게 했는데, 이것은 그의 역사적인 한 모습을 드러내는 중요한 전승자료이다.

참고문헌

안병무, 「예수와 민중」, 『현존』 제106호(1979. 11).

______, 「예수와 민중언어」, 『현존』 제108호(1980.1~2).

______, 「民衆神學(마가복음을 중심하여)」, 『神學思想』 제34호(1981, 가을).

김지철, 「예수의 민중성 -하느님 나라와 그 의」, 『 장신논단』 제6호(1990).

김창락, 「복음의 수혜자로서의 가난한 사람들」, 『신학사상』 제53호(1986. 여름).

쇼트로프, L., 「착취당하는 민중과 노동」, 『새로운 성서해석, 무엇이 새로운가』(한국신학연구소, 1987).

장상, 「예수운동과 여성」, 『기독교사상』 제371호(1989. 11).


|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한국어로 된 성서 연구 참고문헌
전집간행에 부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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