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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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민중사실

by 운영자 posted Sep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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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중사실

루가의 관심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다 지방, 사마리아 그리고 세계로 발전해가는 '구속사'(救讀史)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그 창시적 계승자들이 갈릴래아 민중임을 분명히 한다.

예수가 승천할 때 천사들이 그를 우러러보는 자들에게 "갈릴래아 사람들아!……이 예수는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 11).

사도행전에서는 오순절 성령(氣)강림의 날을 교회 탄생의 날로 본다. 그런데 그 사건은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일어났는데, 그 사건의 주역을 직접적으로 지칭하지 않고 "이 사람들이 다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사도 2, 7)라는 운집한 사람들의 경탄의 말로 나타낸다.

갈릴래아 사람들인 첫 제자들의 핵심은 모조리 예수를 배반하고 도망쳤다. 그렇게 비겁하던 그들이 도도히 예루살렘에 '잠입'하여 예루살렘 주민이 아니라 전세계에 모인 이방에 사는 유다인들(Diaspora)이 운집한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성령의 사건이 일어났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더니 집안(oikos)에 가득 찼다고 한다(사도 2, 2). 이것을 동양적인 표현으로 하면 기(氣)가 꽉 찼다는 말과 같다. 저들은 영(푸뉴마)으로 꽉 차서 전설에나 나옴직한 말(방언, 여기서는 외국어)을 했다(사도 2, 4). 그래서 자기들의 모국어는 잊은 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던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은 저들이 영에 꽉 차서 전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고, 더구나 저들이 외국어를 모르는 무식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 사람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저 사람들이하는 말을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셈인가?(사도 2, 7~8).

처음 '집'이라는 말은 요사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생태학'이란 말이 나온 바로 그 단어(Ökology)다. 그러니 그것은 네 벽에 갇힌 집이 아니라 바로 담이 없는 세계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날에 세계적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성령(氣)을 통하여 이루어졌고, 이 기(氣, 성령)에 의해서 언어로 막혔던 담이 헐렸다는 말이다. 이것이 세계가 하나되는 첫 열쇠이다. 이 사건이 갈릴래아 민중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무능하던 그 민중 말이다.

이렇게 새로 난 민중의 대표인 베드로는 모인 저들에게 일장 연설을 한다.

여러분은 그를 불법한 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내어 다시 살렸습니다(사도 2, 23).

'불법한 자'란 '법 없는 자'와 같은 뜻이다. 그러면 예수를 죽인 세력은 강도와 같다는 뜻이 된다. 법 없는 것 같은데 세상에 죽음의 고통을 당하는 계층은 누구일까? 그것은 권력자나 상류층은 아닐 것이다.

바로 그렇게 죽임당한 예수를 하느님이 죽음의 '아픔'에서 해방했다고 한다. '다시 살렸다'는 말의 본뜻은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를 죽인 세력을 그대로 드러냄과 동시에 고발하고, 그들의 폭력으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한 이가 하느님이라고 한다. 이렇게 죽임 당한 예수를 하느님은 '그리스도'가 되게 했다(사도 2, 36). 승자가 아니고 패자, 강자가 아니고 약자를 세계의 구원자로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중에 대한 기대와 꼭 같다.

한 평신도인 필립보는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 한 사람에게 선교했다. 그런데 그 경우의 텍스트는 '수난의 종'을 노래하는 이사야 53장이었다. 이것은 너무도 민중적 수난자를 서술한 글이다. 바로 그 멸시의 대상인 수난자가 바로 메시아였다는 것이다(사도 8, 26 이하).

첫 순교자인 스데파노의 최후연설은 이스라엘 역사를 진술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그는 '나자렛 예수'가 모세의 법과 성전을 헐 것이라고 역설했다는 이유로 유다인 의회 앞에 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보는 그의 눈은 편향적이다. 그는 이스라엘이 '종살이'하던 이야기와 거기서 해방되는 이야기로 일관하고, 지금의 유다교는 이에 배반한 반역자의 계열임을 통박한다. 이것은 민중적인 맥으로 이어 온 역사에 초점을 두고 있다(사도 7, 2 이하).

후반부의 바울로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경향이 좀 다르다. 바울로는 도시에서 도시로, 로마에서 그때 '땅끝'이라고 생각한 스페인까지 선교할 것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모습이고, 민중과는 별로 관련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첫 선교설교(사도 13장)에서 역시 이스라엘 역사 중에 '애굽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와 그것에서 해방된 사실에서 출발하여 예수의 사건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의 삶의 고별 설교와도 같은 에페소 장로들에게 한 말로써, 그가 일생을 노동하여 살아왔다는 사실(나는 나와 나의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나의 이 두 손으로 일해서 장만했습니다)을 말하고, "이렇게 힘써 일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사도 20, 34~35)라고 역설했다.

바울로의 선교순례의 보고에서도 도처에 이미 그리스도 공동체가 조직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는 바울로가 설립한 것들도 있으나 누가, 어떻게 설립했는지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다마스커스, 안티오키아 그리고 로마에까지 누가 공동체를 조직했을까! 그것은 알 길이 없다. 모름지기 갈릴래아 민중이 사방에 흩어지면서 한 일일 수도 있고 예루살렘에서 헬레니즘계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게 되자 사방으로 흩어진 결과일 수도 있으리라. 하여간 이름을 모르는 수 없는 예수의 민중들이 로마 영역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참고문헌

임영천,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의 분열과 이산에 대한 연구」, 『기독교사상』 제385-386호(199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