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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만일 바울로라는 인물이 그리스도교 형성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교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졌으리라. 그만큼 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그에게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예수 시대의 사람이면서 예수의 직접 제자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예수를 생존시에 만나본 일조차도 없었던 것 같으며, 한걸음 나아가서 원래 그는 열렬한 유다주의자로서 그리스도교 박해의 선두에 섰던 사람이었는데 급전환하여 전생애 그리고 목숨까지도 오직 그를 위해 바쳤다는 사실 때문이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바울로를 알 수 있는 자료는 비교적 많다.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편지들이 가장 직접적인 자료이다. 신약에 그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편지는 무려 13종이나 되며, 바울로의 편지에 따르면 분실된 편지도 여럿 있는 모양인데, 뚜렷한 것은 고린토교회에 보낸 두 편지(고전 5, 9; 고후 2, 4)와 이른바 라오디게이아교회를 거쳐 골로사이교회에 보낸 편지(골로 4, 17)가 그런 것들이다. 그외에도 고린토교회에 보낸 또 하나의 편지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Seneca, B.C. 4?~A.D. 65)와 교환한 한 통의 편지가 있다는 것이 부분적으로 전해지나 그것은 믿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바울로의 이름으로 성서에 수록된 편지들 중에도 개념, 문장, 사상과 그 시대로 보아 바울로의 편지가 아니라고 단정된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사람들은 '제2 바울로 편지'라고 이름하고 바울로의 제자들이 스승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디모테오전후서, 디도서 등이다. 또한 바울로의 것인지 아닌지 아직도 학자간에 정론에 도달 못 한 것으로 골로사이서, 에페소서 그리고 데살로니카후서 등이 있다. 이렇게 보면 전혀 의심없이 바울로의 편지가 확실한 것은 7가지만 남는다. 그러나 제2 바울로서 등도 바울로의 사상계보에 속하기 때문에 바울로를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 다음의 자료는 사도행전이다. 이것은 루가복음과 같은 저자의 것으로, 8장~29장이 바울로의 선교기(宣敎記)를 취급하고 있어 바울로의 편지를 아는 데 큰 지침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부차적 자료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이 바울로의 편지와 내용상 차이가 생기는 경우, 바울로의 편지에 우선권을 주어야 함은 자명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울로의 편지는 A.D. 50~60년에 씌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복음서보다 훨씬 먼저 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사도행전은 빨라도 A.D. 90년 이후의 것이니 그 시간적 차는 30년이나 된다(안병무 외, 『신약성서개론』 참고).

그는 전향 전에는 그 이름을 '사울'이라고 했다. 이것은 전통적인 유다 이름이다. 그러면 '사울시대'의 그의 경력을 살펴보자. 이것은 바울로의 편지 속에 나타난 바울로의 전기적인 자기고백을 통하여 알수 있다.

나는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베냐민지파에서 태어났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에 있어서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열심에 있어서는 교회를 박해한 자며, 율법의 의(義)에 있어서는 흠없는 사람입니다(필립 3, 5~6; 로마 11, 1; 갈라 1, 13~14; 고후 11, 22 참조).

그는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도 베냐민 족속이며 히브리인이라고 한다. 그것은 혈통으로나 언어상으로 순수한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함은 이스라엘의 전통에 충실하게 자라났음을 나타내며, 율법에 있어서 우선 그 당시의 유다교를 지배하던 바리사이 그룹에 속했다는 것은 철저한 율법의 준수자이자 실행자로서 적어도 율법에서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철저한 율법준수자였다는 말이다. 이 점은 갈라디아서(갈라 1, 13~14)에서 더욱 강조한다. 그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데 선봉에 선 것을 바로 그러한 증거로 내세운다. 이 밖에 '사울'에 대한 보도는 두 가지가 더 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는 로마의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인 다르소에서 태어났으며, 또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사도 16, 3721, 3922, 25~29).

이것은 그 가정이 중류 이상의 생활수준에 있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는 유다 경건주의자들의 전통을 엄수했음인지 일찍부터 천막짓기 기술을 익혀 노동으로 살 수 있는 삶의 수단을 갖추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는 당대의 대학자이며 바리사이파의 영수급이던 가믈리엘 문하에 있었다고 한다(사도 22, 3). 그러나 유다인을 향해서 자기는 철저한 유다교 교육을 받았다는 부정적(否定的) 자랑을 할 때에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하여간 그는 철저한 유다주의자였다.

그 당시 유다교에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나는 유다교 전통(율법)을 문자대로 고집하는 보수적인 계열과, 다른 하나는 유다교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개혁파가 그것이다. 보수파는 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말하자면 본토 사람들의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디아스포라' 유다인, 말하자면 외국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의 입장이었다.

그의 고향은 로마의 판도에 들어 있었다. 로마는 군사적으로 그 판도를 넓혀가고 있었으나 그 문화는 헬레니즘이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식민정책은 종교적 강제를 하지 않았다. 되도록 점령지의 종교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비교적 종교에는 관대한 편이었다. 그것은 다른 면으로 말한다면 그들의 관심은 다른 것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군사적 관심과 경제적 관심이다. 그렇다고 저들에게 문화정책이 없었디는 말은 아니다. 저들은 헬레니즘을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그러므로 저들이 가는 곳마다 헬레니즘이 퍼져나갔다. 헬레니즘은 헬라 문화와 중동 고대문화(종교)가 부딪쳐 이루어진 제3의 문화현상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다분히 혼합주의적이었다. 그래서 그때 일반인들의 통용어인 그리스어도 고전적인 문학용어 대신에 이른바 '코이네'(koine)라는 통용어를 내세워서 언어의 통일을 꾀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이 로마의 판도인 헬레니즘 영역에서는 멀리는 소아시아의 여신인 키벨레(Kybele), 에집트의 이시스(Isis), 페르샤의 미트라스(Mithras), 토트(Thot), 아티스(Attis) 등 수많은 잡신들이 재해석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현상에서 유다교도 동방의 하나의 종교로서 헬레니즘 세계에서 그 자리를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유다교는 이미 바빌론 포로 당시에 커다란 디아스포라의 영역을 확립했었는데 그것은 그후 지중해 일대, 소아시아, 그리스, 이탈리아, 마침내는 스페인의 도시들에까지 분포되었다. 외국에 흩어진 저들이 나라를 잃고 흩어져 살면서도 민족으로서 사라져버리지 않게 된 중요한 이유는 이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의 운동 때문이었다. 저들은 유다 본토인들보다는 훨씬 넓은 세계에서 살고 또 상업에 종사함으로써 경제력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폭넓은 세계문화와의 접촉을 통하여 남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자기들의 신앙을 남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여건을 가질 수 있었다.

이른바, '셉두아긴타'(Septuaginta, 70인역)라는 것은 이들의 손으로 구약을 코이네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본토 말인 히브리어에 익숙하지 못한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유다인이 아닌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한 것이다. 이로써 유다인 아닌 사람들에게도 유다교를 신봉하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들을 가리켜 사도행전에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자"(사도 13, 16, 26장)라고 불렀다. 저들은 세례를 받고, 할례를 받았으며, 안식일을 위시한 율법의 계율을 지켰으며, 회당에 드나들었다.

바울로는 이러한 풍토에서 자라났다. 그는 디아스포라 유다교에 뿌리를 박고, 헬레니즘 영역에서 '셉두아긴타' 성서를 읽었다. 이러한 조건들은 그가 기독교를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자라난 지역의 풍조에 무조건 따른 것은 아니었다. 그가 바리사이인이었다는 것은 그가 유다교에 대해서 보수적이었음을 단적으로 말한다. 그는 철저한 전통적인 유다교도이려고 노력했음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박해에 앞장섰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그리스도교에 그처럼 분노했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유다교는 율법의 종교이다. 그런데 바리사이파의 손에서 이 율법 이 하나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념(이데올로기)이 되었다. 율법이란 원래 '토라'(Tohra)로서 모세의 5경에 한한 것이었는데, 바리사이파는 그 영역을 확대해서 예언서는 물론이고 유명한 율법학자(라삐)들의 해석까지 동원하여 일종의 생활규범을 만든 것이다. 좋게 보면 그것은 율법의 생활화다. 그러나 그것에 강권(强權)이 발동되면 일반 법률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구속할 뿐 아니라,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과 못 지키는 사람으로 갈라놓는 역할을 한다. '의안'과 '죄인'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 규율을 기준으로 나은 판단이다. 따라서 이렇게 될 때 유다교는 공로(功勞)의 종교가 된다. 이렇게 하여 유다교에서는 사람이 율법에 따라서 얼마나 공로를 세웠나 하는 것이 구원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저들의 구원은 저들의 업적이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해서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율법에 의해서 의롭게 된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리사이파인 바울로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전향한 '바울로'이다. 위에서처럼 격분한 바울로는 그리스도교 박해의 도상에서 급전환해서 그리도교로 전향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도로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사로 앞장섰다. 무엇이 그에게 이러한 급격한 전환을 가져오게 했는가?

바울로는 예수를 만난 일이 있는가? 그리하여 처음에는 그와 그의 제자들을 박해하였지만 그를 만났던 영상이 마음속에서 점점 강하게 움직여 마침내 그에게 굴복하고 말았는가?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의 두 가지 바울로의 말을 증거로 내세운다. "내가 사도가 아닌가?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보지 못하였는가?"(고전 9, 1)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육신에 따라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체)에 따라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고후 5, 16).

그러나 이상의 두 구절은 정말 역사적 예수를 대면했다는 자랑은 아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그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런데 만일 이 구절들이 역사적 예수를 만난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라면 그는 좀더 구체적으로 말했을 것이며, 적어도 그 많은 편지 안에서 그를 만났던 회상이 단 한 번이라도 언급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가 예수를 직접 보지 못하였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 설령 그가 역사적 예수와 안면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그의 사도 됨과 연결지어서 생각할 때 큰 의미는 없으며, 그 자신도 그런 것에 근거하여 자기의 사도권을 주장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도를 받은 일이 있었던가? 그리하여 내적으로 고민하다가 마침내 어느 계기에 그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것은 그가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을 알았기 때문이었던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저들에게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직접 배웠다는 흔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는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사도 된 것에 대해서 "사람에게서 온 것도 아니요 사람을 통해서 된 것도 아니라"(갈라 1, 1)고 뚜렷하게 잘라 말한다. 아니, 그는 직접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직접 받았다"(갈라 1, 1)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사도행전 9장과 22장 그리고 26장에 그의 회심의 장면이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셋 다 약간씩 틀린다. 가령 9장에서는 따르던 자들 이 소리만 듣고 아무것도 못 보았다고 하는데(7절), 22장에서는 사람들이 빛을 보면서도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고 한다(9절). 그리고 26장에는 부활한 예수의 긴 지시가 있다. 그중에 9장의 기록이 원형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정평이다. 그것에 의하면 바울로는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이러한 순간적인 사건이 그를 굴복시켰다. 한마디로 하면 그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이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그에게서 직접 사도의 사명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 경험을 직접 부활경험을 한 처음의 사도들과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그것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고전 15, 5-8).

그는 무엇을 보았는가? 사도행전에는 그가 어떤 광채를 보고 눈이 어두워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로 자신은 눈으로 보았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바울로는, "그리스도를 내 안에 보여주었다"(갈라 1, 16)고 하며, "'어둠 속에서 빛이 비쳐나오라'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속을 비추셔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우리에게 주셨다"(고후 4, 6)고 한다. 그런 고로 그 사건이 어떤 현상으로 나타났느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요는 그의 안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날까지 자랑하고 자기의 삶의 보람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업적을 "해(害)로 여겼고", 그 "모든 것을 오물같이" 여기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박해하던 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 존귀했기" 때문이다(필립 3, 7 이하). 그의 과거의 삶은 죽고 새로 태어난 것이다.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그래서 "보라, 옛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고후 5, 17)라고 개가(凱歌)를 올리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들은 바울로의 이 경험을 '회심'(回心)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어떤 내적 고민이나 또는 죄책감에서의 회심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결코 과거의 삶을 단순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거나 과거의 자기의 삶이 부끄럽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율법의 의(義)'에 있어서는 흠이 없었다(필립 3, 6)고 자부한다. 아니, 그의 회심이란 하나의 결단의 사건이다. 즉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느냐, 아니면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의 엇갈린 신념에서 율법 밖에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의 전환이다. 이것은 바리사이 체제에서의 탈출임과 동시에 새 세계(자유)의 참여를 뜻한다.

이러한 전환은 다음의 몇 가지 사실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율법의 입장에서 볼 때 경건하다고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메시아가 임했다는 주장을 승인함으로써 저들이 믿는 그리스도를 참 메시아로 승안하는 일이요, 둘째는 그 반면으로 율법 밖에 있는 자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승인하는 일이다. 이런 승인은 어쩔 수 없이 율법의 입장에서 소외자로 규정된 자들, 그리고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에 승복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회심은 단순히 그의 삶의 전환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전환과 동시에 그는 이 사실의 증인으로 나섰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자각하였다(로마 11, 13).

그런데 이러한 사실의 승인은 그런 것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의 승인과 관련된다. 그것은 바로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사실이 곧 하느님의 구원의 사건이라는 것을 승인하는 일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것은 유다교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의 저주다. 그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것은 법적으로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다적인 견지에서 볼 때 결코 메시아적인 최후일 수 없으며, 그가 죄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장할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사건을 하느님의 구원의 행위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을 승인한 것이 바울로의 회심의 핵심이다. 이 십자가의 사실을 구원의 사건으로 승인하는 것은 그리스적인 사고(思考)에서도 설명되지 않으며, 유다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하나의 거리낌이다. 그런 뜻에서 그는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지만 구원 받는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능력이 됩니다"라고 하고, 그것을 지적(知的)으로 규명하려는 모든 지혜를 일축하고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하는 선교를 통하여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라고 하며, "유다 사람들은 기적을 구하고 헬라 사람들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이것은 유다 사람들에게는 거리낌이 되고 이방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다 사람에게나 헬라 사람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능력이요, 하느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 18)라고 외친다.

그러기에 바울로의 회심을 단순히 그의 심리적인 갈등에서 이해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실로 구체적인 사실 앞에 압도되어 그것을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로가 받은 이러한 획기적인 계시를 그가 선 상황과 유리시켜서 단순한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하느님의 계시는 언제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통해서 나타난다. 우리는 왜 하필 디아스포라 유다인인 바울로에게 이방인을 위한 사도의 소명의식이 생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 예수의 직접 제자인 사도들은 이방인의 전도에 그처럼 우유부단했고, 훨씬 후에 그리스도인이 된 바울로에게 이방인에 대한 선교의 정열이 생겼을까?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는 이방인 세계에서 많은 잡종의 신을 섬기는 풍토에서 이방인들과 이웃해서 산 유다인이다. 그러나 율법에 의한 경건만이 유일한 의인의 길이며 구원의 길이라고 고집하고 있는 한, 그 사이의 장벽을 넘을 길이 없다. 그렇다면 이웃하고 있는 저들은 영원히 하느님의 구원에서 소외되어야 한단 말인가? 저들은 하느님의 피조물이 아닌가? 어둠 속에 있는 저들의 구원에 대한 갈구는 도외시해도 좋은가? 하느님은 세계의 하느님, 온 인류의 하느님이 아닌가? 그러면 저들의 구원의 길을 막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유다 율법주의이다. 이 율법주의를 고수하는 한 이방인과의 관계는 영원히 단절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바울로가 살고 있던 이 상황과 바울로가 받은 계시를 유리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이방인들의 신음소리에서 세계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소리를 들었으며, 그리고 그 앞에 그의 결단을 통해서 ―즉 자기의 지금까지의 종교적 신념을 포기함으로써―참 복음을 받았으며, 동시에 저들을 위한 사도직의 소명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바울로는 '회심'과 더불어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가 되었다. 그후부터 그는 일생을 피나는 고투로써 일관하였다. 그는 손수 천막을 짓는 일로 생계(生計)를 이어가면서 지중해 일대를 몇 차례씩이나 도보로 돌고 돌았으며, 마침내 당시의 세계의 수도인 로마로 돌입하였고, 그의 최후 목표를 당시의 땅끝이라고 생각된 스페인까지로 했던 것이다. 그는 그의 전도자의 생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더 심한 고역을 했으며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 없이 맞았으며 여러 번 죽을 뻔했습니다. 유다 사람들로부터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그리고 스물네 시간 동안을 아득한 바다 위에서 헤매었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 강물의 위험과 도둑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노동과 고역에 시달리며 여러 번 밤을 새우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고후 11, 23-27).

그의 전도자로서의 삶은 실로 초인간적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의 사도들이나 유다인들에게서 도움은커녕 언제나 백안시당했으며 월권행위를 한다고 비난을 받았다. 따라서 그는 거의 단신으로 로마의 판도를 누비면서 그리스도에 마친 사람처럼 전도했다. 그는 마치 자기가 박해하던 그리스도에게 자기의 죽음으로 참회하려는 듯이 그 길을 가고 또 갔다. 그러므로 그 한 몸을 육탄삼아 어둠 속을 뚫고 들어감으로써 역사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다. 종으로서 그는 인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을 보냈던 것이다.

이상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의 삶이고 성서의 표현에만 의존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전향을 다른 각도에서 물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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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한국어로 된 성서 연구 참고문헌
전집간행에 부치는 말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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