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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자유는 구원의 구체적 현실이다. 바울로는 그리스도인은 자유한 자임을 거듭 강조한다(고전 6, 129, 119; 갈라 5, 113). 그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자유인이어서 아무의 종도 아니지만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고전 9, 19).

여기서 우리는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 자유마저도 포기하게 하는 어떤 것을 본다. 그게 무엇인가?

바울로는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이다. 그는 그의 반생을 완전히 그리스도에게 바쳤다. 그것은 비단 선교의 사명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위에서 본 대로 그는 그의 구원을 위해 앞으로 계속 달리는 자세, 앞서가는 그리스도의 손을 잡으려는 심정으로 달렸다. 그는 그가 남에게는 그리스도를 소개하여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하고 자신은 그 대열에서 탈락될 것을 겁내기도 한다(고전 10, 27). 그러한 그가 "나는 내 동족인 형제를 위하여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오히려 나는 한이 없습니다"(로마 9, 3)라고 한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구원마저도 포기할 각오를 하게 했는가? 그것은 사랑이다. 바울로는, 모든 계명을 집약하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로마 13, 9)는 것이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에게 볼 수 있는 것과 같다(마르 12, 31).

바울로는 구원의 열쇠를 믿음에서 찾는다. 그는 믿음을 율법행위와 대립시켜 구원의 새 가능성임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역설한다. 그런데 그는 저 유명한 '사랑의 찬가'의 결론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제 일은 사랑입니다"(고전 13장)라고 하며,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고전 13, 2)라고 한다. 사랑은 믿음보다 더 위에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을 제거한 믿음이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런 고로 그는 "사랑으로 행하는 믿음"(갈라 5, 6)이라는 말까지 쓰고 있다. 믿음이 하느님 앞의 존재의 형태라면, 사랑은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의 삶의 양식이다. 이 둘은 바울로에게서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 점이 앞서 언급한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의 주인공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바울로는 황홀하리만큼 장엄한 사랑의 찬가를 읊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하여 사랑이 무엇이냐를 말하지는 않는다. 사랑은 사실상 물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왜냐하면 더불어의 삶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할 때만이 사랑은 실재하며 객관화하면 없어져버리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니까 '사랑이 어떻더냐'(how)는 계속 설명해도 '무엇이냐'(what)는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더불어 사는 길'에 접근해보는 길밖에 없는데 다음의 몇 가지 예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 : 바울로에게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 공동체로서의 교회다. 그것은 사회학적 대상으로 볼 때 더불어 사는 한 집단이다. 그런데 바울로는 그것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길을 제시한다(고전 12, 12~27).

더불어 사는 것은 한 몸의 지체가 상호의존해서 사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이미 혈통이나 사회적 신분 따위의 담을 부숴버린 한 몸과 같다. 몸이 지체들로 형성되듯이, 지체는 몸을 이룰 때에만 있을 수 있다. 또 지체는 각기 다른 능력과 기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기 제 길만 감으로써 화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한 몸에 속해 있으며 또한 몸을 형성해가는 공동의 목표를 가졌기에, 즉 유기적 관계에 있으므로 상호보완한다. 그중에 어느 하나가 그 일을 못하면 전체에 영향이 미친다. 한 곳이 아프면 전체가 아프며, 한 지체가 상쾌하면 전체가 또한 그렇다. 이런 입장에서 바울로는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시오"(로마 12, 15)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더불어 산다는 것이 너 없이 내가 있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지체 중에 귀하고 천한 것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외적으로 드러나서 굉장한 역할을 못하는 지체가 더 소중할지언정 멸시받을 수는 없다.

바울로는 물론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몸의 유기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바로 고린토교회의 반목과 분열상태를 알고 공동체에서 더불어 사는 길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고린토교회 안에는 유다인과 비(非)유다계 사이의 문제도 있었지만 소수의 중류 이상의 회원들과 대다수의 민중 사이에 계층적 알력도 있었던 것이다(고전 1, 26-31). 이런 여건에서 진통하는 고린토 공동체에게 그는 멸시당하는 자들을 두둔하고 멸시하는 자들을 비판하면서, 결국 몸의 이론까지 동원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더불어의 존재이다. 어떤 형식으로나 이웃과 더불어 산다. 이 삶을 떠나서 하느님과의 직접 관계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참된 더불어의 삶은 하느님 앞에서의 존재성을 분명히 할 때만 가능하다. 하느님 앞에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방해하는 것은, 사람을 이웃으로 생각지 않고 이용의 대상 또는 통치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의지와 그것에서 생긴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로는 세상에 이른바 지혜있다는 자, 강하다는 자, 무엇보다 통치자들을 경원하고 있는 것이다(고전 1, 26 이하2, 6~8 참조).

 

호스 메의 삶 : '호스 메'(hos me)란 '마치……아닌 것처럼(as …… not)'이란 그리스 말이다. 바울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유인이어서 아무의 종도 아니지만……유다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유다 사람 노릇을 했습니다. 그것은 유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 그리 한 것입니다. 율법에 매여 사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나 자신은 율법에 매여 살지 않으면서도 율법에 매여 사는 사람처럼 살았습니다……(고전 9, 19~23).

이 삶의 양식을 일러 '호스 메 윤리'라고 한다. 사람들 중에는 이 말 중에서 바울로의 호스 메의 동기를 문제시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요는 그가 사실상 더불어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글자 그대로 버리고 알몸으로 온 로마 영역을 누비면서 자기를 내놓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가 당한 수난기록을 볼 때, 그를 어느 측면에서나 비판할 권리는 없다(고전 4, 11~13; 고후 6, 4~511, 23~27).

그는 "누가 약해지면 내가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내가 애타지 않겠습니까?"(고후 11, 29)라고 한 것처럼 마치 팔이나 다리를 한 밧줄에 매인 노예집단의 한 사람처럼 더불어의 관계에서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불가항력적으로 운명을 같이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호스 메의 행위는 위선자이기 쉽다. 가령 위의 서술법과 유사한 다음 몇 가지 그의 발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길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부유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하거나 궁핍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필립 4, 11~12).

이것은 더불어 사는 관계와 관련된 말이다. 그는 사랑 때문이면 어떤 상태에서도 자기를 적응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는데, 그것은 '너를 위한 나'일 때 가능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그의 태도를 위선으로 바난할 소지가 있다. 즉 '그런데도 아닌 척'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행위가 정말 사랑에서 우러나와서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위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울로는 모든 것(소유)을 버렸다. 뿐만 아니라 비록 물 한 그릇을 대접받는 것을 사도의 권리로 알았으나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립의 길을 의식적으로 선택했다. 이렇게 그는 직접 몸을 움직여 일하여 생계를 이어가면서 '너'를 위한 길에 나선 자이다. 그러므로 그의 '호스 메'의 윤리도 어디까지나 '너'를 위해, 너와 더불어 사는 자로서 하는 행위이지 인위적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호스 메'는 그저 관념상으로 '너'에게 나를 적응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호스 메'는 엄밀한 의미에서 그의 입장이 되는 것이어야 진실한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어떤 가정(假定)이나 가상(假相)을 통하여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와의 일치를 추구하는 길은, 내가 가진 것을 '나'를 위해 보존하면서 맞선 대상에게 동류성을 '일시적'으로 보이기 위한 행위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에서 말하는 '데크네'(takne, 영어로는 technic)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입장이 구체적 문제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이른바 우상의 제물 문제다. 바울로는 '우상'을 신(神)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또 그 앞에 바친 음식물도 단순히 음식물로 보았지 우상의 제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양심에 거리낌없이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을 수 있다고 보았다(고전 8, 4).

그러기에 헬레니즘 영역에서는 우상에게 바치지 않은 식물이 없는데도 "시장에서 파는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묻지 말고 먹으면 됩니다. 땅과 거기 가득한 것들이 다 주(主)의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0, 25~26)고 하며, 어떤 불신자의 집에 초대받았을 경우에 그 음식의 출처를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한다. 그만큼 자유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그것은 우상의 제물이었다고 지적하는 경우에는 먹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양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만큼 성숙하지 못하여 아직 우상을 믿고 그것에 바친 제물은 구별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말라는 것이다(고전 8, 710, 28~29).

여기서는 일면 위선적이며 솔직하지 않은 면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로는 그런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을 만큼 확실한 기준과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는 그 약한 형제를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라는 분명한 전제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발전시키면 결국 윤리, 종교, 그외 모든 가치기준이 그 앞에 상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믿음, 소망 등이 바울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원의 열쇠로 제시되었는데도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즉 그런 귀중한 것도 사랑에 상충될 때에는 주저없이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바로 그렇게 파악한 것이다.

참고문헌

안병무, 「바울의 自由論」, 『現存』 제81호(1977. 5).

김창락, 「여러분은 평등과 자유의 아들들이다(갈라 3 : 26~4 : 7)」, 『 기독교사상』 제386호(1991. 2).

장상, 「바울 사상 이해의 문제점」, 『신학사상』 제27호(1979. 겨울).

김창락, 「바울의 의인론, 무엇이 문제인가」, 『신학연구』 제27호(1986).

쇼트로프, L., 「죄와 해방 : 로마서를 중심하여」, 『신학사상』 제29호(1980. 여름).


|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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