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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예수의 수난사는 마르코의 것이 그 선구이다. 그러므로 루가는 그에게 많이 의존한다. 그러나 마르코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루가의 예수 수난사 안에 다른 것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곧 안다. 우선 여기서는 두 수난기의 유사점을 보자.

첫째, 예수는 그의 수난예고를 세 번하는데(마르코적), 바울로도 예루살렘행을 다짐하는 장면이 세 번 나온다. 그러나 '왜'에 대해서는 둘 다 밝히지 않으므로 독자를 당혹하게 한다.

둘째, 예수의 예루살렘행 도상의 기록이 루가에서는 유달리 복잡하고 상세한데(6, 51~18, 29), 바울로의 예루살렘 도상의 서술도 길고 자세하다.

셋째,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환영과 박해가 평행하는 것도 같다. 루가는 특히 예루살렘 군중이 예수를 보고 기뻐했다는 말을 쓰고 있는데, 단어는 다르나 바울로의 경우도 같은 뜻의 환영을 받는다(루가 19, 37; 사도 21, 17).

넷째, 예수와 유다 종교 지배계층과의 논쟁에 부활론이 있는데(루가 20, 27 이하) 바울로에게서도 같다.

다섯째, 예수를 체포할 때 무리들이 앞장서는데(루가 22, 47) 바울로의 경우도 같다. 단 그 배후에 대제사장, 성전 수의대장, 장로들이 있었음을 명기하는데, 이것은 루가의 편집구다.

여섯째, 심문과정으로서 바울로는 군중산헤드린펠릭스 총독, 즉 법정에서의 아나니아 대제사장을 위시한 유다 지도자 앞페스도 총독 주재 아래 또 한 번의 유사한 심문헤로데 아그리빠 앞 등으로 되어 있는데, 예수의 심문과정도 마르코에는 산헤드린과 빌라도 법정으로 끝나는데 루가에는 대제사장의 집산헤드린빌라도 법정그리고 헤로데 앞 등으로 되어 있고 이것은 바울로의 경우와 유사하다.

일곱째, 끝으로 예수의 경우처럼(루가 23, 15) 바울로도 로마법에 의하면 무죄라고 하면서 끝끝내 석방하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유다인들의 압력에 로마총독이 법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상의 고찰에서 이유사성이 역사적 사실이 바탕으로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루가는 마르코의 순서를 대체로 따랐으나 수난사에서만은 다른데, 아마도 다른 자료를 갖고 있었으리라는 주장이 옳을 것이고, 수난기를 예수의 수난사를 모델로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그리 무리가 아닐 것이다.

루가에 따르면, 예수의 경우와 같이 바울로도 유다교에 의한 범죄 자로 고소됐지 로마법에는 저촉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헤로데를 등장시킴으로써 그 점을 더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로마법에 저촉된다는 것은 정치범임을 뜻한다. 특히 루가는 빌라도가 "분명히 이 사람은 사형을 받을 만한 일은 하나도 행한 것이 없소"(루가 23, 1415 이하22)라고 반복하는데, 바울로에 대해서도 거듭 '사형'이나 '투옥'당할 만한 범죄가 없음을 반복한다(사도 23, 2925, 2526, 31).

로마법에서 사형의 대상은 반로마 정치범, 구체적으로 반로마 게릴라 부대원이다. 즉 바울로는 예수의 경우처럼 민중폭동을 선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단순히 유다교와의 교리적 견해 차이에서 생긴 유다인들의 문제라는 인상을 주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 바로 핵심적 문제가 있다. 그가 정말 그렇다면 로마총독에게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실을 루가는 알고 있다. 고린토에서 유다인들이 바울로를 붙잡아 '갈리오' 총독에게 고소했을 때, 총독은 "그대들의 율법에 관한 것이라면 그대들이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이런 사건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사도 18, 15)라고 재판을 거부한다. 이것이 바로 당시 로마의 식민지정책인 것이다. 저들은 종교적 교리싸움에 관한 한 절대 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을 아는 루가는 예수를 고소하는 말로,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 국가를 전복시키고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반대하고 자칭 그리스도당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됐다"(루가 23, 2; 루가 고유)는 고소로써 사건을 성립시키려고 한다. 이런 내용이 아니면 빌라도가 그를 처형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런 핵심적인 이유가 마치 유다인들이 고소의 장본인이며 또 유다교 문제를 들고 나오게 하는 것이 뒤섞여져서 예수의 십자가처형의 이유를 미궁에 빠뜨리듯, 바울로의 경우도 줄곧 율법이나 유다교 모독이 주요인이듯이 내세우는 것과, 사이사이에 튀어나오는 정치적 고발이 뒤섞여서 그의 체포, 투옥의 이유를 미궁 속에 빠뜨린다. 이 점을 다시 회고하자.

처음 바울로를 죽이려는 폭도들의 분노는 순수하게 유다교 모독이 그 이유였다. 그 자리에 로마군 천부장이 뛰어든다. 그리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그 폭도들에게서 격리시키기 위해 데리고 가는 도중에 엉뚱하게도 "당신이 얼마 전에 반란을 일으키고 나서 폭도 4천 명을 이끌고 광야로 나갔던 그 에집트 사람이 아니오?"(사도 21, 38)라고 묻는다. 이런 협의를 받았다면 이 천부장은 총독에게 인계할 이유가 있다. 더욱이 그때 상황에서는 그렇다.

총독 펠릭스 통치 때(A.D. 52년부터) 극단적 종교민족주의자들이 결사대를 조직해서 로마군 또는 친로마 민족반역자들을 암살하는 운동을 벌였는데, 그들을 일러 '시카리'(sicarier)라고 했다. 'sica'는 '비수'라는 말로서 '자객'이란 뜻이다. 이들에게 살해된 첫번째 사람이 로마 세력을 등에 업고 세도 부리던 대제사장 요나단이었다. 펠릭스는 이들 색출에 분망했는데 이들과 별도로 어떤 인물이 나타나 하느님이 '자유의 표시'를 그대에게 보여줄 것이니 나를 따르라고 하여 3만 명을 규합, 게릴라부대를 형성해서 감람산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했다. 그런데 펠릭스는 로마군을 동원해서 그들과 접전, 그중 400명을 죽이고 200명을 체포함으로써 그 주도자는 그 부대를 이끌고 에집트로 잠적한 일이 있다. 그 천부장은 바울로에게 '네가 바로 그 사람이냐'고 묻는 것이다. 단지 차이점은 그 수와 '에집트인'이라는 것인데, 4천의 4(Δ)는 30(V)을 잘못 읽은 전승 때문이고 그 주도자는 유다인인데 에집트에 잠적해서 에집트인이라고 와전 됐을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상황에서 바울로에게 그런 협의를 둔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또 그렇다면 총독에게 호송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또 그런 시각으로 볼 때에만 2대 총독들이 연속하여 그를 투옥했다가 로마에까지 호송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유다인의 율법문제라면 역사적으로 전혀 얘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런 가정에서 본문을 다시 보면 그 천부장의 질문은 그 맥락에서 너무나 엉뚱한데, 만일 사도행전 21장 31절 후반의 "온 예루살렘이 소란하다는 정보를 천부장이 듣게 됐다"를 사실의 기점으로 하고, "그는 당장에 군인들과 백부장을 거느리고 그 사람들에게 달려갔습니다"(32절a)"천부장이 앞으로 나아가 바울로를 붙잡고 두 쇠사슬로 그를 결박하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사람이며 또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34~37절)에 연결시키면 그 천부장의 질문은 핵심이 드러나고 문맥도 자연스럽다. 21장 31절의 '소란' 또는 '소요'라고 번역되는 스타시스(stasis)는 정치적 용어이며, 이것이 고소의 핵심일 것이다.

율법문제로 고소하던 유다인들은 마침내 그를 "이 사람은 염병 같은 자요, 온 천하에 있는 모든 유다 사람들을 소란케 하는 자요, 나자렛당의 괴수"(사도 24, 5)라고 그 죄를 집약한다. 온 유다인을 소요케 한다면 로마에 대한 반란죄를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고, 나자 랫당이라고 한 '나자렛'은 예수의 고향과 결부시켜 그리스도교 명칭 이거나 아니면 히브리어 '나자로'(교원)에서 '구원주의자'라는 뜻일 수 있고, '당'이라고 번역한 하이레시스(hairesis)는 종교적으로는 '이단적 분파', 정치적으로는 '집단'과 같은 뜻으로 결국은 '유다 민족 해방집단'이라는 것을 나타내려는 용어로 볼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정치적 소란자'란 말이다.

바울로의 자기 변호연설 중 여러 얘기가 있으나 "군중을 선동한 일이 없다"(사도 24, 1218)는 주장, 또 고소의 내용과 상관없이 카이사르에게 아무 죄도 지은 일 없다(사도 25, 8)는 반복되는 변명 등은 그가 바로 그런 혐의로 구속되었음을 역설적으로 나타내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의심을 받을 만한 바울로의 발언이 그 천부장의 질문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문맥 속에 나오는데, 사도행전 26장 6~7절이 그것이다.

저는 하느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 서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열두 지파는 밤낮 열심으로 하느님을 섬기면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전하! 저는 이 희망 때문에 유다 사람에게 고소를 당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유다인 조상에게 준 약속", "열두 지파가 밤낮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그 약속이 도대체 뭘까? 그 다음 8절은 이 희망을 부활과 관련시킴으로써 약속의 내용을 흐리게 하며 또 그 문맥 자체도 포물선을 긋는다. 사람들 중에는 이 약속 또는 희망이 예수에게서 성취된 부활이라고 하나 그 부활은 복수로 되어 있기 때문에 대담한 비약을 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오히려 '그 약속! 그 희망 때문에 로마제국에게 고소를 당하고 있습니다'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까닭은 유다 조상에게 한 약속, 더욱이 열두 지파라는 너무도 유다 민족 색채를 띤 집단에게 준 약속은 유다적 메시아왕국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말을 비록 로마의 앞잡이기는 하나 유다의 피가 섞인 아그리빠 앞에서 한 말로 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상과 같이 극히 짤막한 단편들을 종합해서 보면, 바울로가 체포 투옥된 이유로 루가가 내세운 것과는 상반되는 역사적으로 다른 가능성을 보게 된다. 만일에 예수가 로마제국에 의해 투옥되거나 처형 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이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한 근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상 바울로는 투옥됐다. 그리고 A.D. 60년경 로마에서 처형됐으리라는 것이 거의 정설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루가는 예수가 반로마 선동자로 고소되었고, 또 그런 이름(유다의 왕)으로 처형됐는데, 빌라도가 그의 무죄를 확신하면서도 최종적으로 그를 처형한 것으로 서술한 것처럼 바울로의 수난기도 같은 서술법을 쓰고 있는 것일까?

보른캄은 루가는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이미 그의 서술방향을 정했다고 보고,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는 데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또한 이방인 로마에 그리스도의 위대함과 평화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교를 정치적인 적으로 보는 오해를 제거하려고 했다고 한다. 분명히 사도행전의 전체 경향은 혼합주의적 성격을 보이고 있다.

사상적으로 한편으로는 유다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아테네)의 여러 종교에 이르기까지 바울로는 접촉점을 모색하거나 그가 믿는 복음을 그 내용으로 담으려고 한다. 이것은 바울로적이 아니다. 그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보다 다른 것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갈라 1, 8)고 할 만큼 타협을 모르는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는 베드로의 위선적 행위를 사람들 앞에서 힐책하고 예루살렘의 이른바 '기둥'이라는 이들에게 받은 것이 없음을 선언하고, 독자의 길을 분명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것과 대조되는 면도 있다. 그는 그 상황에 적응할 줄 안다고 거듭 말한다. 유다인과는 그들에게 맞게 이방인과는 역시 그들에게 맞게!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까지 양보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가난하게 살 수도 있고 부하게 살 줄도 알고, 가지고도 안 가진 자처럼, 안 가지고도 가진 것처럼 살 수 있다고 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의 융통성이다.

그런데 루가가 쓴 바울로의 수난기는 로마제국과 유다교 사이에서 양쪽에 다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결과, 독자를 미궁에 빠뜨리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루가의 주체적 입장으로 규정하고 그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울 수는 없다. 루가는 그의 서술법이나 문장에 있어서 상당한 수준의 지식인임을 보여준다. 그런 루가가 이 수난기가 어설프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우리는 루가가 바울로를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도록 한 루가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 이상 더 발전시키지는 못하나 한가지 사실만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그것은 이 수난기가 바로 요한계시록에까지 상징화해서 등장하는 그리스도 박해의 장본인인 도미띠아누스(Domitian)의 무자비한 독재시대에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참고문헌

전경연, 「바울이 받는 재판」, 『신학사상』 제27호(1979.겨울).


|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한국어로 된 성서 연구 참고문헌
전집간행에 부치는 말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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