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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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수의 새 해석

by 운영자 posted Sep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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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의 새 해석

요한복음의 처음에 로고스(logos)라는 말이 나온다. 이 개념은 그리스에서 연유한다. 이 첫마디가 벌써 저자의 정신적 풍토와 더불어 새로운 언어로 예수를 새롭게 해석해야 할 사명감에 몰려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로써 이원적 언어를 들어 세계가 몽매함을 밝힌 후 세례자 요한을 통해서 예수를 새롭게 해석한다. 요한복음에는 역사적인 것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는 데 비해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는 어느 복음서보다 많이 언급하는 것은(요한 1, 1519~373, 23~2425~305, 33~3610, 40~41) 세례자 요한파(派)가 건재한 때라는 것과, 이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를 느낀 증거이다. 그에 대한 결론은 그는 예수의 선구자가 아니라 예수의 증인으로서 그의 제자들은 이제 예수에게 돌아가야 할 때이며, 이것은 한마디로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요한)는 쇠하여야 한다"(요한 3, 30)로 집약된다.

또한 그와 더불어 유다교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처리하며 그것에 대한 정립을 통해 예수를 새롭게 해석해야 할 상황에 있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요한 2, 1 이하) 물로 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이전까지 사람들은 예수가 무엇보다 앞서서 결혼을 축복했다는 설교를 많이 들어왔으나, 이 이야기는 실상은 낡은 유다교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조시킨 이야기이다. 낡은 술(유다교)은 이미 그 수명이 끝났다. 그때 예수는 물로 술을 만들어 새 장을 연다. 그 술은 이미 수명을 다한 낡은 술과 비교할 여지 없는 참 술이었다. 이것으로 그리스도교의 축제와 같은 기쁨의 때가 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먼저(공관서는 나중) 예루살렘 성전을 숙청함과 더불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성전종교에 영원히 대치된 것임을 그림으로 해석해주고(요한 2, 13 이하), 유다 민족의 지배체제인 산헤드린과의 관계도 니고데모라는 한 상징적 인물을 통해 그의 무지를 폭로함으로써 그 한계를 선언하며, 그것 자체는 아무 희망이 없고 모두 다시 나는 일, 즉 혁명이 일어나는 길뿐임을 천명한다(요한 3, 1 이하).

또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이미 사마리아의 그리짐 산의 성전이냐 예루살렘의 성전이냐 하는 때는 지났고, "참된 예배를 드릴 때가 올 것이다……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라고 함으로써 이때는 이미 지역을 초월하는 성령의 새 시대임을 천명한다.

이러한 논조는 그리스도 이전의 일체의 것, 특히 지도층은(유다인으로 대표시킨) 노예요, 소경이요, 악마의 자식들이요, 민중을 속이는 지도자(목자)의 마스크를 쓴 도둑놈이라는 등의 맹렬한 비판과 함께 계속 '그리스도는 누구냐'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그이야말로 자유케 하는 이 세상의 빛, 양을 위해 목숨을 내대는 참 목자, 하느님이 보낸 이다라고 한다.

그러한 그를 서설에서 밝힌 것처럼 "이 세상의 어둠이 깨닫지 못하여 십자가에 처형해버리라"했으나 그것은 바로 "다 이루어졌다"라는 승리의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이 마지막 말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하고 큰 섭리와 더불어 운명했다고 한 마르코의 십자가 이해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해석! 그것은 바로 믿음의 대상을 먹고 소화시키면서 살려는 행위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떡은 곧 내 살이다"(요한 6, 50- 51)라고 한 말씀을 새롭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