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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5. 마라나타

묵시록은 "내가 속히 오겠다"는 약속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기다림이 그 기조를 이룬다. 그런 의미에서 계시록은 약속과 기다림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이 책 벽두에서부터(계시 1, 4) 주님을 "장차 오실 분"으로 전제하고, 여러 교회를 향해서 "속히 오겠다"고 약속한 것에 호응해서 '마라나타(주여 오소서 :아람어)'라고 한다. 이 "마라나타"라는 기다림의 고백 속에는 절박한 위기에 직면한 세기말의 그리스도교도들의 신앙의 결단이 포함되어 있다.

저들의 정치적 박해상태는 이미 위에서 언급했다. 그 현장을 "네가 어디 사는지 안다. 그곳은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계시 2, 12). 또는 "보라, 악마가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던지려 한다. 너희는 환난을 당할 것이다"(계시 2, 10). 한때 네가 미친 칼을 휘둘렀는데 지금은 도미띠아누스가 그리스도교의 박해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그를 "네로"라고 암시하며(계시 13장), 그가 아우구스투스에서부터 여덟 번째 황제이기에 이름 대신 "여덟 번째 왕"(계시 17, 11)이라는 암호를 쓴다.

그 밑에서 피를 흘리는 민중이 마라나타를 부른다. 한마디로 마라나타는 세상에 안주한 자의 것이 아니고 수난자의 기도이다. 그러나 반드시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다. 불의가 자행되는 현장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자의 기도이다.

계시록은 당대 사회의 불의를 고발하는데, 그것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인간이 권력으로 세계를 구조화하고 그 안에 사람을 노예로 감금하고 혹사하는 것이다. 이 권력을 여러 가지로 규정하는 중에 "모든 족속과 백성과 언어와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계시 10, 1113, 717, 15)이라는 말이 전형적인 것이다. 다스리는 데에 특히 예외없이 언어(glossa, 혀)를 다스린다는 것이 꼭 포함된 것은 중요하다. 독재자의 특징은 언어통제이다. 계시록의 문학형태도 바로 이 언어통제 때문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에, 계시록의 저자는 이것을 그 특징으로 반복한다. 성서는 '언어와 통치'에 깊은 관심이 있다.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는 언어의 통일로 잘 통제된 제국을 그대로 두면 위험해서 언어혼란을 일으키게 했다는 설화이다. 이 언어는 통치자가 다스리기 위한 언어다. 이것을 뒤집어보면 민(民)에게는 언어제한, 언어통제다. 그러므로 통치와 복종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불의가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묵시는 사회악의 정곡을 찌른다.

또 하나는 '세상의 상인'들의 불의다. 이 상인들은 권력을 등에 업은 또 하나의 민중의 박해자다. 저들의 불의를 "금, 은, 보석, 진주, 고운 삼베, 자줏빛 옷감, 비단, 붉은 옷감, 각종 향나무, 각종 상아가구" 그리고 더 나아가 "계피, 향료, 향, 몰약, 유향, 포도주, 감람유" 등의 장사꾼이라고 한다(계시 18, 11 이하). 그 품목에서 저들이 어떤 계층을 위한 어떤 생활용품을 공급하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저들이 권력층의 앞잡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 저들의 민중에 대한 착취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상인들의 상업품목에는 심지어 "노예와 사람의 목숨"(계시 18, 13)이라고 한 것에서 저들은 권력자의 앞잡이로, 필요하다면 사람도 죽여주는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음란한 창기 로마"와 맞장구를 치던 제왕들은 그 음녀가 망할 때에 그것이 불에 타는 연기를 보고 가슴을 칠 것이며, 그들은 그 여인이 받는 고통이 무서워 멀리 서서 "화가 있다, 이 도시에! 강한 도시 바빌론이여! 네게 대한 심판이 한순간에 이르렀구나"(9~10절)라고 할 것이며, 상인들은 그 여자 때문에 울며 슬퍼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상품을 살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11절)라고 하며, 저들은 그 여인을 보며 "화가 있다, 화가 있다, 고운 삼베와 자줏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전주로 꾸민 큰 도시에 그렇게 많은 재물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구나"(16절)라고 할 것이라고 한다. 이로써 그 당대의 사회정의가 어떤 계층에 의해서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한 체제의 종말이 바로 '마라나타'로 집약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갈급히 기다렸다. 누구를?

저들은 막연하게 기다리지 않았다. 이미 반드시 오겠다고 약속한 그를 기다렸다. 인간은 기다림의 존재니까 기다린다는 식의 이른바 존재론적 인간관계에서 저들의 기다림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저들은 표류된 사람이 구조선을 기다리듯 온다고 약속한 그를 기다린다.

성서의 '기다림'은 이미 만났던 그이가 다시 온다고 한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 그런데 그 약속은 단순한 말의 약속이 아니다. 그는 약속의 신표(信標)를 남겼다. 마치 우리 옛 풍습에 갈라서야 할 정황에서 다시 만날 때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무엇인지 절반을 잘라 나누어 가졌듯이, 저들은 그런 신표를 받고 기다리는 자들이다. 그것이 바로 부활사건이다. 그런데 초대 그리스도교도들은 그것을 '흰 돌'로 상징했다. 원래 흰 돌은 법정에서 배심원들이 피고의 무죄를 입증할 때 들어 보이는 표시물로 사용했거나, 혹은 왕이 베푸는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이 입장할 때 입장권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흰 돌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서로를 알아보는 동지 식별의 신호표로 삼고, 함께 이제 올 그를 기다리는 신호로 간직했다. 오실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했나?

그들은 단순히 현재의 고난을 피하기 위해 기다린 것이 아니다. 이미 음녀와 야합한 왕들과 상인들에게 심판을 예고 했듯이 불의한 이 세계의 권력자에게 아첨하여 노래하고 피리 불고 춤추는 무리마저 사라지고(계시 18, 22), 모든 낡은 것이 완전히 끝나고, 오직 하느님의 주권만이 인정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기다린 것이다. 그것은 "주는 죽음을 당하셨고, 그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사셔서(해방해서) 하느님께 드리고", "주께서 그들로 왕국을 이루게 하는"(계시 5, 9) 현실이다. 그런데 그때는 기다리는 것만큼 빨리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참 되신 대주재 여,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지 않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렵니까?" 또 "우리의 피의 원수를 갚으시지 않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렵니까?"(계시 6, 10)라는 안타까운 기도와 절규가 있었다.

절망에 가까운 이런 절규에 대해서 "때가 가까웠으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계시 22, 10)고 한다. 인봉하지 말라는 것은 곧 '공개'한다는 뜻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도, 의로운 자도 다 알게 해야 할 때가 임박했으니까 인봉해서 비장해 둘 여유가 없다. 이것은 "내가 속히 오리라"는 예고와 더불어 심판과 축복을 함께 고하는 것이다. 그가 속히 오기를 바라는 것은 박해받는 자가 갈구하는 바이기 때문에 기쁨의 소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심판이다. 평소에는 선과 악의 한계가 모호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흑백처럼 뚜렷하게 갈릴 것이며, 모든 진상이 폭로될 것이다. 개봉하면 운명은 결정된다. 그것은 "이미 늦었다"의 현실이다. 그러니 글자 그대로의 종말, 돌이킬 수 없는 끝장이다. 그러나 현재는 깊은 밤이다. 그래서 계시록에서는 희망과 절망이 명멸한다. 그러나 결코 방향없이 유랑하거나 암중모색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바라보는 이를 "빛나는 새벽별"(계시 22, 16)이라고 하는 표현에서 시위되고 있다.

"주가 온다"는 예고는 명령을 수반한다. 그러기에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해서 위로와 약속을 하면서도 반드시 경고와 지시가 뒤따른다. "죽도록 충성하라", "흰옷은 깨끗이 빨아 입어라", "꼭 이겨라" 등이 그런 것이다.

사르디아교회에 하는 말씀은 충격적인 지시다. "죽어가는 남은 자들에게 힘을 넣어주라"(계시 3, 2). 이 지시에는 벌써 많은 배신자가 생겼으며, 남은 자가 견디기 어려운 시련에 지쳐 있는 현실을 노출한다. 저들을 살려야 한다. '체념'이 '죽음'이라면 저들을 '체념'에서 해방시켜야 하며, 저들을 죽음의 주변에까지 억누르는 것이 물리적 힘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대항해서라도 그 밑에 깔린 저들을 구해내라는 것이다. 죽음의 경지에 있는 자를 구하려면 바로 그런 죽음의 무덤에 뛰어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마라나타'를 반복하는 저들의 기다림은 곧 투쟁인 것이다. 이것은 '오실 그'가 나 홀로의 그가 아니고 기다리다가 한맺힌 가슴을 안고 지쳐버린 민중의 그다. 이 민중 전체가 실의에서 '마라나타'를 함께 그리고 크게 외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실상 초대 교회는 이런 형식의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사회자가 때가 속히 오리라" 하면 민중은 "아멘,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라고 회답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개인의 소리가 아니라 집단적 기도요 절규로서 전승되어왔다.

참고문헌

김철손,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어린양의 分析的 硏究」, 『神學思想』 제13호(1976. 여름).

서인석, 「요한이 받은 계시」, 『司牧』 제6호(1968. 8).

안병무, 「마라나타」, 『 現存』 제75호(1976.10).

이정희, 「요한묵시록과 민중」, 『신학사상』 제58호(1987).

사르팡디에, E. 외, 안병철 역, 『묵시록』(카톨릭출판사, 1989).


|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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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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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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