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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집

2017.07.04 01:11

성서를 꿰뚫어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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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재성

(한신대학교 교수)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


막 군복무를 마치고 한신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이다. 고향 교회 목사님이 신학을 하려면 봐 두는 게 좋을 거라면서 책을 두어 권 빌려주셨는데 그 가운데 안병무 교수님의 『해방자 예수』가 있었다. 그 책을 건네주면서 그분은 안 교수님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주 유명한 분이라고 한 것 말고는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뚜렷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그분 자신이 안 교수님한테서 직접 배운 적이 있다고 하면서 은근히 그 사실을 자랑하신 것이다.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그분한테 한번 배운 것을 저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일까? 그런 마음으로 그 책을 펼쳤던 것 같다. 쉽지는 않았지만 단숨에 읽어내려갔고, 그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왜 사람들이 안 교수님한테 배운 것을 그렇게 자랑으로 여기는지 알 만 했다. 그분의 글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그저 글 재주로 쓴 글이 아니었다. 읽는 동안 읽는 이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일어나게 하고, 그 글 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큰 맥을 잡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십 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이 바로 안 교수님이 늘 강조하시던 ‘성서의 맥’임을 알 수 있었다. 아무런 전문 지식도 없는 한 청년이 안 교수님의 책 한 권을 대하고서는 성서의 그 굵고 힘찬 맥을 느끼고 이미 새 세계에 눈을 뜨는 경험을 한 것이다.


갈릴리의 예수


이듬해에 한신에 입학하였지만 안 교수님을 뵐 수는 없었다. 당시 안 교수님은 두 번째 해직을 당하신 상태였다. 우리는 안암동에 있던 한국신학연구소를 찾아가서, 이미 폐간된 {현존} 과월호를 구하기도 하고, 구할 수 없는 초기본은 복사본을 만들어서 보기도 하면서, 안 교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우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이 날아 왔다. 1984년 2학기에 안 교수님이 복직이 되어 강단에 다시 서시게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느낀 반가움과 설레임과 기쁨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때 복직하셔서 학부에서 처음으로 개설하신 강좌가 〈갈릴리의 예수〉이다. 강의실은 장공관 3층에 있는 꽤 큰 강의실이었는데 모처럼 강단에 서시는 안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들로 꽉 찼다. 강의실의 열기는 대단했다. 강의하는 사이 사이에 질문이 이어졌고, 대답은 마치 질문을 딱딱 자르기라도 하듯이 핵심을 짚어내는 것이었다. 혹 누가 엉뚱한 질문을 하기라도 하면 안 교수님은 잘못된 점을 직설적으로 지적을 해서 질문한 사람의 얼굴이 화끈해지게 만들기도 하셨다. 안 교수님의 강의는 그만큼 권위가 있었다. 서양의 저명한 신학자들의 이름을 들면서 거침없이 평가하고 비판하여 우리들을 서양 학문에 대한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다. 안 교수님은 자신의 주장을 할 때에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100% 믿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었다. 똑 같은 말이라도 안 교수님이 하시면 더 권위 있게 느껴지고,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교수님은 의자에 앉아서 강의하셨지만 목소리는 힘이 넘치고 날카로웠다. 강의 내용은 그대로 편집하면 책이 될 정도로 잘 준비된 것이었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실제로 몇 년 후에 그 강의 내용이 {갈릴래아의 예수}라는 책으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출판이 되었다. 외국의 학자들은 강의 준비를 하도 철저하게 해서 강의록이 그대로 책으로 출판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실제로 우리도 안 교수님한테서 그렇게 잘 준비된 강의를 들은 것이다. 그때 그 강의를 얼마나 열심히 들었는지, 그 학기가 지나고 나서는 예수의 시대 상황과 예수 운동의 맥에 대해서는 마치 자신이 일가견이라도 갖춘 듯한 자신감이 들었다. 그때 배운 것이 지금까지도 연구하거나 강의하거나 설교를 할 때에 밑거름이 되고 있음을 늘 느낀다.
먼저 졸업한 선배들은 우리를 보고 복이 많다고 하였다. 정작 선배들은 안 교수님한테 직접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더 늦게 들어온 후배들이 그럴 기회를 가졌으니 행운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안 교수님한테 배우면서 선배들의 그런 말이 맞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그 강좌 말고도 대학원에서 안 교수님 세미나를 세 개나 더 들었으니, 또 우리가 안 교수님한테 배우고 나자마자 곧 안 교수님은 정년 은퇴를 하셨으니, 우리는 안 교수님한테서 배울 수 있는 마지막 행운을 잡은 셈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해 볼 때,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하고 돌이켜 볼 때, 배움의 의욕이 뜨겁던 그 젊은 시절에 안 교수님 같은 분을 만나서 직접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진정 복 중의 복이요, 주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성서는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다


안 교수님의 세미나 방식 또한 너무나 독특해서 잊을 수 없다. 그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면, 그분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은 적어도 그 학기에는 신학자가 되어 스스로 글을 한 편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안 교수님은 철저하게 자기 생각을 쓰라고 하셨다. “성서는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다”면서 자기 물음을 가지고 성서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안 교수님한테 들은 첫 번째 세미나가 〈공관복음서 연구 세미나〉였는데 그때 들은 얘기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안 교수님은 자기 생각과 판단이 없이 다른 신학자의 글들을 나열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셨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더라도 그것에 동의를 하면 자기 말로 바꾸어서 쓰고 주를 달면 된다면서 각주 다는 법까지 일러주시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는 … 라고 한다”는 식으로 쓰지 말고 항상 “ … 이다”는 식으로 소신 있게 자기 생각을 쓰라는 것이다. 어쩌면 ‘겸손한 신학도’로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안 교수님은 자기 생각을 가진 ‘작은 신학자’가 되기를 요구하신 것이라 하겠다. 이런 요구는 사람들을 흥분하게 하고 흥미진진하게 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겁나게 어려워 보이는 독일어 영어 원서를 번역하고 요약해서 보고서를 제출해야 될 줄 알았던 우리들에게, 그런 것은 보아도 좋고 보지 않아도 좋으니 자기 생각을 쓰라는 요구는 진정 신선한 것이었다.
안 교수님은 늘 학기 초에는 한 학기 동안 자기가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 생각해 와서 발표를 하라고 하셨다. 공관복음서 연구 세미나에서는 공관서를 대상으로, 요한복음 연구 세미나에서는 요한복음을 대상으로 해서 한 가지 주제를 찾는 것이다. 그때 중요한 것은 절대로 미리 다른 신학 서적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바로 성서본문을 직접 읽고 스스로 관심이 가는 주제를 찾아서 나름대로 연구를 해 보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자기 연구가 옳은지 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글도 참조한다는 것이다.
학생들 가운데는 처음에는 그런 방식의 세미나가 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어느 한 주제를 가지고 자기 생각을 써야 하니 생각을 많이 해야 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야 하니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기본으로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공부를 해도 무척 많이 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공부가 지루하지도 않았고 오래 오래 잊혀지지도 않았다. 남의 생각을 요약하거나 간추리는 것이 아니라 늘 자신의 입장, 자신의 사고로 만드는 작업을 했기 때문에 그런 작업을 하는 동안 그 주제가 아주 머리에 박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 한 분야에 대해서는 아주 박식하게 되고 글을 한 편 쓰기에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창의력과 노력을 아낌없이 끌어내어 실력을 갖추게 하는 세미나 방식이다.
안 교수님은 칭찬에 후하시지는 않았다. 어지간히 잘하지 않아서는 칭찬을 듣지 못하고 늘 지적만 받기가 일쑤였다. 때론 얼마나 호되게 질책을 하시는지 옆에서 보기도 민망하고 듣는 사람은 좌절감을 느낄 것 같은 분위기도 가끔 있었다. 그런 것을 한 번 보고 나서 얼마나 겁이 났던지, 하룻밤을 꼬박 새워서 발표 준비를 한 적이 있다. 잘 해서 야단을 맞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아주 무리를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비몽사몽간에 발표를 했을 때 안 교수님은 크게 만족해 하시면서 ‘잘했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해 주셨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직접적으로는 처음 들어 본, 그리고 오래 오래 잊을 수 없는, 큰 칭찬이요 격려였다. 그때 발표한 주제가 ‘예수의 기적’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런 격려에 힘입어서 그 주제를 더욱 연구하게 되었고 나중에 석사학위 논문도 그 주제를 가지고 쓰게 되었다. 안 교수님은 그렇게, 누구를 비평을 하거나, 칭찬을 해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래 오래 잊을 수 없게 하셨다.
세미나에서 비평을 받은 사람은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다시 글을 써야 하고 그래도 만족할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또 다시 써야 했다. 한 학기에 세 번이나 다시 써서 발표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작품을 보고서로 제출하면 한 학기가 끝난다. 그런 과정에서 때로 힘들어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나면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글을 한 편씩 갖게 되는 뿌듯함을 맛보았다. 그때 낸 보고서들을 지금도 갖고 있는데 조금 보완하여 어디에 발표를 해도 될 정도로 제법 깊이 연구한 것들이다. 안 교수님한테 지도를 받은 박사과정 세미나는 네 사람이 들었는데, 얼마나 진지하게 논의를 했는지, 그때 제출한 네 사람의 보고서들을 모아서 나중에 한 권의 책으로 냈을 정도였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숨은 재능들을 우리로 하여금 이끌어 내게 하고, 한번 만나기만 해도 글을 한 편 쓰게 만드는 그분은 참 선생님이시다.
이런 세미나 방식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가르치는 이가 미리 무슨 질문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주제를 찾아오기 때문에 연구 주제도 다양하고, 토론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기 때문에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세미나를 준비하는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보통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슨 정해진 범위가 있는 게 아니라 어느 분야에 어떤 질문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 교수님은 그 많은 질문들에 정말 쉽고도 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셨고 전혀 막힘이 없었다. 질문하는 사람이 이러 저러한 말로 길게 설명을 해도 대답은 짧게 한두 마디로 하셨다. 그래도 그 대답은 항상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꿰뚫는 것이었다. 우리는 학생의 기나긴 질문을 듣고는 질문의 요점이 무엇인지 잘 모르다가도 오히려 안 교수님의 짧은 대답을 듣고 나면 비로소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입장이 되어서, 가끔 학생들이 질문을 해 올 때면, 안 교수님 생각이 난다.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단 한 마디로 학생들의 궁금증이 확 풀리도록 대답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답을 해놓고 나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아서 설명을 덧붙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한 소리를 또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뭔가 깔끔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고 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성서와 현실을 꿰뚫고 흐르는 맥


안 교수님이 무슨 질문에 대해서든 그렇게 빨리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신 비결은 무엇일까? 안 교수님이 그 모든 분야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아서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안 교수님이 성서 전체를 꿰뚫고 흐르는 맥을 파악하고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성서 전체를 꿰뚫고 흐르는 맥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그 큰 틀에서 무슨 문제든지 체계를 잃지 않고 설명을 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안 교수님 자신이 성서의 그 굵고 힘찬 맥을 스스로 발굴하는 기쁨을 맛보았고, 그 맥과 자기 안에서 꿈틀거리는 맥이 만나는 경험을 했기에, 그렇게 자신감과 확신이 넘쳤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글을 쓰고도 그치지 않고, 마르지 않는 샘처럼 글들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안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해 주려고 하지 않고 그런 성서의 맥에 스스로 다가가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그 길을 안내해 주셨다. 그리하여 그분을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신학을 하게 되고, 자기 글을 쓰게 되고, 자기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얼마나 위대한 변화인가!
“성서의 맥을 파악해야죠. 성서를 관통하는, 꿰뚫고 흐르는 맥을 파악하는 눈을 길러야 됩니다.”
안 교수님께서 세미나 시간에 몇 번이나 힘 주어 강조하신 말씀이다. 오래 오래 잊혀지지 않는, 그리고 앞으로도 늘 되새기고 싶은 말씀이다. 그것은 그저 부분보다는 전체를 파악하라든가, 기술적 분석보다는 사상적 통찰에 힘쓰라는 말이 아니다. 전체적인 맥을 모른 채 그저 어느 한 부분만을 열심히 분석하는 것으로 신학자의 할 일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그 다음은 모른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서의 어느 부분을 연구하든, 자기 물음을 갖고 들어가서, 성서에 살아 흐르는 맥과 만나는 경험을 하라는 것이다.
성서의 세계에 들어가는 사람은, 수천년을 넘게 흐르고 있는 성서의 맥 속에서, 오늘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느끼게 된다. 그 경험이 없이, 그저 성서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서, 성서의 사건이나 예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같이 대한다면 그는 절대로 성서의 맥을 파악할 수 없다. 읽는 이의 실존과 관계되지 않는 성서 읽기는 의미가 없다. 읽는 이의 역사적 자리로 책임적으로 돌아오지 않는 성서 읽기는 성서의 맥을 꿰뚫는 것일 수가 없다. 성서의 맥을 꿰뚫는 것은 그 힘찬 맥이 우리 삶과 역사 속으로 꿰뚫고 흐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 교수님은 성서의 맥을 꿰뚫고 있었기에 그렇게 날카롭게 우리 현실의 문제들을 꿰뚫어 보고 예언자적 통찰을 할 수 있었다. 안 교수님 전집을 내는 작업을 하면서 한 30여년 전에 쓰신 원고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글에서 2000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처럼 말씀한 것이 오늘에 거의 그대로 들어맞고 있음을 보면서 다시 한번 그 통찰력에 놀랐다. 안 교수님에게서 성서를 꿰뚫어 보는 것과 이 세상을 꿰뚫어 보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은 것이다.


그분이 남기신 가장 큰 선물


『살림』 편집장 일을 맡으면서 다달이 안 교수님으로부터 글을 한 편씩 받아서 읽고 교정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깐, 안 교수님은 “믿음에는 저축이 없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주시고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살림』에는 지금도 안 교수님의 글이 연재되고 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쓴 글들도 전혀 오래 된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은 안 교수님이, 수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성서의 맥을 파헤치면서 글을 쓰셨기 때문일 것이다. 성서의 맥을 찾아서 금광을 캐는 듯한 기쁨으로 써내려 간 한 행복한 분의 글들이 그분의 서재에는 아직도 많다. 그 많은 글들을 읽다가 보면 그분이 진정 행복한 분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거침없이 써내려 갈 수 있고 그렇게 번뜩이는 통찰과 지혜를 쉬지 않고 떠올릴 수 있었으니 그 순간마다 얼마나 기뻤겠는가. ‘내 속 어디에서 이런 것들이 나오는가’ 하고 여러 번 놀라셨으리라.
우리는 그분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분이 느낀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고 그분이 잡은 성서의 맥을 함께 잡을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 아닌가 한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그분이 느낀 그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성서와 현실을 꿰뚫어 보시던 그 눈을 우리도 가질 수 있다면, 안 교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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